아침 저녁으로 제법 싸늘함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요즈음 이제 가을의 허리에 와 있는 듯하다.
가을하면 청명한 에메랄드 하늘빛, 산야를 붉게 수놓은 단풍, 그리고 어디론가 무작정 여행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좋은 계절, 지난 10월8일이 아내의 60회 생일이었다. 미국에 이민 올 때 세 자녀를 데리고 아내 혼자 이민 생활을 시작했는데 어언 21년째, 39세의 중년의 여인이 60세의 할머니로 변해 버렸다. 그래도 자녀 셋은 잘 자라고, 잘 공부해서 대학 마치고 각자 전공대로 취직하고 결혼해서 6년 전에 막내딸이 마지막으로 우리의 곁을 떠났다. 뉴욕으로, 버지니아로, 로럴로 각자 둥지를 틀고 날아갔다. 9개월 된 손자까지 이제 손자손녀가 일곱 명이다. 우리 부부는 후손의 축복을 받아 감사할 뿐이다. 여기까지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고, 복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
아내는 미국에 온지 21년째, 나는 미국에 온지 14년째이다. 7년 동안 ‘기러기 아빠’ 신세로 홀로 지냈다.
우리 부부는 이민생활에 급급한 나머지 가까운 곳이라고 여행 한 번 변변히 못했고, 계절 따라 꽃구경, 물놀이, 단풍구경, 온천이나 스키 등 즐길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할 정도로 그저 앞만 보고 일했다. 누군들 구경하고 싶지 않겠는가? 주어진 현실에 얽매여 허덕이다 보니, 청명한 하늘만 바라보고 도로변 단풍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나는 미국에 와서 아내를 위해서 해 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의 부족하고 무능함에 자책할 뿐 아내에게 죄를 짓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이번 아내의 60회 생일 ‘환갑’만은 그대로 보낼 수 없었다.
둘이서만 조용히 여행을 떠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것도 아내 쪽에서 적극적으로 가자고 했다. 토요일과 월요일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어려움을 무릅 쓰고 ‘나이아가라 폭포’ 쪽으로 여행지를 정하고 여행사에 전화를 해 계약금을 지불했다. 실로 21년만의 외출, 둘 만의 여행이었다. 우리 부부만이 홀가분하게 일상을 떠나는데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내에 대한 미안함에 작은 보상이라 여기면 한결 내 마음이 가벼워졌다. 신혼여행(1973년) 후 둘이서 만은 처음인 것 같다.
평일에는 몸이 닳도록 일하고 주일은 주일대로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봉사해야 한다. 거기다 자녀들 뒷바라지 자녀들 결혼, 산후조리 등으로 ‘어디 한 번 여행 가볼까?’ 생각조차 못하고 살았다. 그런 면에서 우리 부부가 스스로 가엽고 불쌍하기까지 한다. 스스로 위로하고 서로를 위로해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더욱 커지는 여행이다.
‘나이아가라’는 인디언 말인데 ‘천둥소리 폭포’란 뜻이란다. 그 웅장하고 위엄 있는 천지를 진동하는 천둥소리 같은 폭포 앞에서 한 없이 작고, 한 없이 연약하고, 한 없이 초라한 내 모습을 보았다.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수많은 물의 잔해는 더 작아지고 더 낮아지고 더 겸손한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겨야겠다는 다짐의 기도를 드렸다. 튀어 오는 물방울을 피해 유람선 뒷자리에서 웅크리고 있는 아내의 깔깔대는 모습을 보고 저렇게 좋아하는 여행을 앞으로는 일 년에 두세 번 계획을 세워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와 자녀들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열심히 일했고 집안일까지 곁들여 해내느라 이젠 온몸이 아픈 곳 투성이다. 그렇지만 보배로운 일곱 손자손녀들의 재롱에 마냥 행복하기만 하는 우리 부부는 외쳤다.
‘10년의 나이야! 가라!’ 아무리 외쳐도 나이가 뚝 떨어지겠는가? 마음이 젊어지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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