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이야기를 하다보면 가끔 ‘마음씨 좋은’ 선생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험시간에 정답이 아리송해서 썼다 지웠다 하고 있을 때, 시험 감독하던 선생님이 씽긋 웃음으로 혹은 눈짓으로 힌트 비슷한 것을 주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신입사원을 뽑는 입사시험장에도 가끔 ‘마음씨 좋은’ 감독관이 있곤 했다. 대개 젊은 사원들이 시험 감독으로 차출되다 보니 남성사원들 중에는 시험장에서 예쁜 여성들에게 필요 이상의 ‘친절’을 베푸는 일이 때로 있었다. ‘불법’이라기보다는 애교로 넘길 에피소드들이다.
하지만 교사가 작정을 하고 학생들의 답안지를 고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극히 제한적인 케이스이기는 하지만 지금 미국의 교육현장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지난달 말 캘리포니아 교육국은 2010년 학력평가지수(API)를 발표하면서 가주 학생들의 실력이 현저하게 향상되었다고 기뻐했다. 교육국이 목표로 삼았던 API 800점(만점 1,000) 이상을 성취한 학교가 가주 전체에서 49%나 되는 기록을 세웠다.
요즘 공립학교 사정은 좋지 없다. 교육구마다 예산 부족으로 교직원을 감원하고 서머스쿨 등 학력 프로그램들을 줄이고 있어 학교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도 API가 전년도에 비해 평균 10점이 올라갔다니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희소식을 기뻐할 새도 없이 어두운 소식이 터져 나왔다. 학생들의 좋은 점수가 학생들의 실력 덕분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암시이다. 교사들이 학생들의 답안지에 손을 댔다는 것이다.
LA 통합교육구의 경우 델 레이의 쇼트 애비뉴 초등학교와 잉글우드의 아니모 리더십 차터 고교가 ‘문제 학교’로 적발되면서 이번 API 결과가 무효처리 되었다.
쇼트 애비뉴 초등학교는 ‘성공 모델’로 주목받던 학교였다. 저소득층이 전체 학생의 2/3이고, 인종별로 라티노가 2/3인 소수계 학교로서 학생들의 실력향상이 눈에 띄었다. 지난해 API 점수는 848점으로 주정부 목표선(800)을 훌쩍 뛰어 넘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사건이 터졌다. 교사 두 명이 학생 답안지를 고친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 학교의 모든 실적이 의심 받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2학년 담임인 한 교사는 학생들이 학력평가 시험을 보고난 후 그 시험에 나온 문제들을 다시 복습시켰다. 그런 다음날 시험지를 다시 내주자 학생들은 전날의 오답을 모두 정답으로 바꾸었다. 그런가 하면 산수 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대부분 빈칸으로 남겼다는 한 학생의 시험지에는 정답이 모두 표시되어 있었다.
틀린 답을 쓴 학생들에게 ‘틀렸다’고 가르쳐주거나 연습장에 힌트를 써주는 교사, 학생들이 제출한 시험지에서 오답을 고친 교사 등이 이번에 적발되었는데 이런 현상이 가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애틀랜타에서는 100개 학교 중 44개 학교에서 부정행위가 보고되고 82명의 교사들이 이를 시인했다. 저돌적으로 교육개혁을 밀어 붙였던 미셀 리 교육감 시절의 워싱턴 D.C. 교육구에서도 비슷한 의혹과 우려가 제기되었었다. 학생들의 시험지에 비정상적으로 지운 자국이 많으면 의심의 대상이 된다.
이 모두가 점수위주의 교육 시스템이 갖는 함정이다. 학생의 시험성적으로 교사의 실력이 평가되고 학교가 평가받는 시스템이니 일부 양심 없는 교사들이 유혹을 받는 것이다. 시험보는 학생 못지않게 시험 감독을 감독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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