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관 개천절 행사와 겹쳐 주최측 당황
한인 정치력 과시할 절호의 기회, 외면 말아야
진부하기는 하지만 호사다마라는 말 밖에는 쓸 말이 없을 것 같다. 오는 29일 저녁 5시 워싱턴 한인사회의 큰 관심 속에 루터 잭슨 중학교에서 ‘미 정치인 후보자 토론회’를 여는 버지니아한인회를 두고 하는 얘기다.
난처한 일은 최근 벌어졌다. 그것도 주미대사관이 직접 관여되는 바람에 문제를 풀기가 더욱 쉽지 않아 보인다.
후보자 토론회 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는 마이클 권 수석부회장의 입을 빌려 정황을 설명하면 이렇다.
“후보자 토론회 당일 저녁 6시에 대사관에서 개천절 행사가 열린다고 합니다. 초청장을 받은 단체장들이 한결같이 말하더군요. 개천절 행사 때문에 부득이 참석을 못할 것 같다고.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회장 한 사람만 못 오는 게 아니니까 그렇습니다. 모두가 가족은 물론 회원들을 많이 데리고 오겠다고 약속했었기에 기분이 매우 좋았는데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임원들이 매우 화난 상태입니다.”
권 준비위원장은 지난 달 12일 홍일송 회장이 윤순구 총영사를 만난 자리에서 후보자 토론회 개최 계획을 알리고 윤 총영사의 참석을 부탁했을 때 아무런 말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됐다는 주장이다.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윤 총영사는 이렇게 해명했다. “개천절인 10월3일이 독일 통일 기념일이어서 이날 행사를 하게 되면 많은 외국 공관 손님들이 독일 대사관에 가기 때문에 이날 기념식을 할 수는 없었다. 국군의 날인 10월1일은 토요일이고, 9월30일도 금요일이어서 적당치 않아 29일로 결정했다….”
대사관이 개천절 기념식 날짜를 언제 결정했는지, 후보자 토론회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또 지금 시비를 가리는 것도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다만 후보자 토론회 보다 먼저 개천절 행사 날짜가 정해졌다면 홍 회장이 토론회에 윤 총영사를 초청했을 때 왜 아무런 말을 안 했는지 의아할 뿐이다. 당시는 행사가 겹친다면 버지니아한인회가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반대로 토론회 날짜를 몰랐거나 알면서도 그렇게 결정했다면 외국 공관 초청 때문에 동포사회의 큰 행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어쨌든 발 등에 불이 떨어진 버지니아한인회만 급해졌다. 청중 동원 전략에 큰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토론회는 후보들의 정견을 직접 듣는다는 것만큼 우리 한인사회의 정치 역량을 역으로 주류사회에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러니 한인들이 많이 모일수록 좋은 것은 불문가지다.
그런 점에서 한인단체장들의 현명한 결단이 더욱 필요해졌다. 후보자 토론회가 얼마나 중요한 행사인지 알아야 한다. 후원단체 명단에 이름만 걸어놓는 게 아니라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몸으로 뛰며 참여하는 단체임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단체들이 후보자 토론회를 후원하겠다고 먼저 약속했다. 약속은 지키기 위해 맺는다.
개천절 기념식은 매년 열린다. 누가 가도 상관없는 행사다. 그러나 후보자 토론회는 한 번 실기하면 한인사회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킬 수 있고 회복도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잔치를 벌여 놓고 스스로 우습게 여기거나 훼방을 놓는 어리석은 일은 없어야 한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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