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길었던 42년 독재가 마침내 끝났다. 트리폴리의 본거지를 반군에 내준 리비아의 카다피는 이것이 나토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한 ‘전술적 퇴각’이라며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옛날 6.25 당시 한국 지도자들이 결코 수도 서울을 버리지 않을 거라 약속한 후 낙동강까지 ‘작전상 후퇴’를 한 것을 연상시킨다.
카다피는 아직 잡히지 않았지만 그의 지배는 종언을 고했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그의 고향인 시르테로 가 끝까지 저항할 수도 있겠지만 철옹성 알 아지지아와 친위대가 무너진 상황에서 그가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것은 카다피 몰락을 바라보는 소위 한국 ‘진보’ 논객들의 시각이다. 지난 3월 정부군에 비해 전력이 턱없이 부족한 반군들이 수세에 몰려 전멸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리비아 내전 개입에 머뭇거리던 미국과 나토는 어쩔 수 없이 공습을 시작했다. 그러자 한 논객은 인터넷 신문에 올린 글에서 “진보의 본질은 평화와 외세 배격”이라며 반군 지원 불가피성 주장을 비판했다.
만약 그 때 외세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반군들은 카다피 군에 의해 본보기 살육 대상이 됐을 것이다. 그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독재 타도와 인간 평등을 내세우는 ‘진보’가 이런 주장을 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광주 사태 때 시민들이 무기를 탈취해 정부군과 맞선 것은 잘못이고 외세 미국이 중립을 지킨 것은 잘 한 일이다. 시민들이 가만히 있었으면 평화롭게 끝날 일을 괜히 들고 일어나 유혈참극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독재가 끝났다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리비아 국민들과는 대조적으로 일부 진보 매체들은 이번 사태를 “외세의 도움을 얻어 성공한 불완전한 혁명”으로 폄하하고 있다. 세상에 완전한 혁명도 있나 보다. 이런 미온적인 태도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카다피는 진보주의자도 사회주의자도 아니다. 오로지 일가친족만 두고두고 오래 해먹겠다는 카다피 주의자다. 그럼에도 그가 ‘진보’의 동정을 받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 그가 일관된 반미주의자라는 점이다. 반미 하나면 모른 허물은 덮어진다.
그가 망명길에 오를 처지가 되자 차베스의 베네수엘라와 카스트로의 쿠바 등이 그를 받아주겠다고 나섰다. 차베스와 카스트로는 ‘진보’의 우상이다. 사귀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 면모를 알 수 있다고 ‘진보’가 카다피 몰락에 떨떠름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정권을 뒤집어엎는 것보다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것은 훨씬 어렵다. 리비아 같이 민주주의 경험이 전혀 없고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있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렇더라도 카다피 축출은 정의의 실현이다. 역사는 때로는 퇴보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전진한다는 것을 리비아 사태는 확인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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