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많이 타는 서울에서는 올 여름 남성들이 상당히 당황스러운 순간들을 겪었다고 한다. 깎아지른 듯 경사진 계단을 오를 때나 지하철 좌석에 앉아 있을 때, 눈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몰라 난감한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라고 불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계단을 오를 때면 커다란 가방으로 엉덩이를 가려야 하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좌석에 앉으면 일단 허벅지부터 가려야 한다. 혹시라도 딴 생각하느라 잠시 소홀하면 꽤나 민망스런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올 여름 유행 중인 소위 ‘하의실종’ 패션 때문에 생기는 일들이다.
초미니, 마이크로 미니로 불리는 요즘의 짧디 짧은 패션이 선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가을. 한국에서는 아이돌 스타들이 초미니 스커트나 반바지를 입고 무대에 등장해 눈길을 끌면서 그들을 흉내 내고 싶어 하는 젊은 여성들 사이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초미니 패션은 자연스레 유행을 탔는데, 하의가 짧아질수록 상의는 반대로 길어진 것이 또 다른 특징. 상의가 엉덩이를 덮을 정도로 풍성해져 속에 입은 짧은 반바지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기 일쑤이다. 그래서 얼핏 보면 “윗옷만 입은 거 아니야?”싶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그래서 붙여진 말이 ‘하의실종’이다.
‘하의실종’ 패션은 10대· 20대는 물론 30대까지로 퍼지고, 길거리나 휴양지는 물론 사무실 안으로까지 퍼진 상태. 요즘 젊은 세대는 직장에도 거리낌 없이 초미니 스커트나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을 하니 일부 상사들은 “복장에 대해 말을 하기도 그렇고 그냥 보고 있자니 눈에 거슬리고… ” 심기가 편치 않다고 한다.
직장이라는 보수적 환경과 신세대 여성들의 첨단패션 감각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셈인데 그 비슷한 사건이 최근 할리웃 보울에서도 벌어졌다. 클래식 음악이라는 대단히 보수적 무대에 24살의 생기발랄한 중국계 피아니스트가 몸에 딱 붙는 마이크로 미니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 것. LA 교향악단과의 협연인 만큼 관객들은 바닥에 끌리는 우아한 이브닝드레스를 기대했는데 그런 그들 앞에 피아니스트 유자 왕은 허벅지를 다 드러낸 주홍빛 초미니 원피스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순간 관객들은 “여기가 록 콘서트 장인가?” 하며 눈이 휘둥그레졌고, LA 타임스의 음악 평론가는 그의 의상에 대한 코멘트를 하기에 이르렀다. 유자 왕의 원피스가 너무나 짧고 너무나 몸에 딱 붙어서 거기서 조금만 더 나갔더라면 ‘18세 미만은 할리웃 보울 입장 불가’라는 규정이 생길 판이라고 꼬집었다.
그것이 2주 전. 이후 클래식 음악계는 연주자의 의상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로 한바탕 시끄러워졌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보통 오케스트라 멤버들에게는 복장 규정이 있지만 협연하는 솔로이스트들에게는 규정이 없다. 성악가나 피아니스트 등 솔로이스트는 의상도 연주의 한 부분이어서 자신의 음악을 최대한 잘 살릴 수 있다고 판단되는 의상을 자유롭게 선택한다.
한창 떠오르는 스타 피아니스트 유자 왕은 라흐마니노프에 대한 음악적 이해와 20대 다운 패션 감각을 접목시켜 자신을 가장 개성 있게 표현한 셈. 클래식 음악무대의 ‘하의실종’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발랄한 피아니스트의 파격적 시도가 일회성으로 끝날지 젊은 음악가들 사이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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