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여자월드컵에서 우승한 소식은 전 세계 축구팬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본의 정상등극은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이어진 원전 누출 참사의 충격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하고 시름에 잠겨있던 일본 국민들에게는 기적 같은 낭보였다. 예선전부터 매 경기 때마다 지구촌 친구들이 참사 때 보내준 성원에 감사한다는 대형 플래카드를 들고 나왔던 일본 선수들은 심정적으로 자신들을 응원해 준 많은 세계인들에게 보답한 셈이 됐다.
일본과 미국의 경기는 골리앗과 다윗의 대결로 비유될 만했다. 일본이 비록 세계 랭킹 4위에 올라 있기는 하지만 최강 미국을 꺾으리라고 기대한 축구 팬들과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일본의 승리가 확정되자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은 “FIFA에 몸담은 36년 동안 가장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말했을 정도다,
경기 내용도 미국의 일방적 우세였다. 슈팅수는 27대14로 미국이 훨씬 많았고 코너킥도 8대4로 앞섰다. 미국의 슛이 크로스바와 골포스트를 맞고 튀어나온 것만도 두 차례. 미국에게는 지독할 정도로 운이 따르지 않았다. 경기 내용으로는 4대1정도의 스코어가 났어야 했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일본의 승리였다. 역시 공은 둥글다는 것을 월드컵 결승은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일본이 객관적인 열세를 극복하고 최강 미국을 격침시킬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운이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은 볼을 최대한 점유하는 작전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미국에 밀리기는 하지만 짧은 패스를 통해 최대한 볼을 점유하면서 공격기회를 노렸다. 볼 점유율을 높이려면 세밀한 패싱과 침착함이 뒷받침 돼야 한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기술이 아니다. 다른 국가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 일본은 꾸준히 경기력을 높여왔던 것이다.
여기에다 자국민들의 눈물을 씻어주고 위로와 용기를 주어야 한다는 각오가 경기력을 배가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두 번이나 미국에 먼저 골을 허용하고도 포기하지 않고 따라 잡은 것은 이런 정신력의 결과였다. 일본의 우승은 스포츠가 기량과 체력으로만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일본의 우승 못지않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성숙한 패자들의 모습이었다. 독일과 미국이 그랬다. 지난 두 대회 우승팀으로 이번에도 당연히 자기 땅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릴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독일은 8강전에
서 일본에 일격을 당해 탈락했다.
독일 국민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이었을 텐데도 월드컵은 결승까지 매 경기가 관중석이 꽉 들어차는 열기 속에 진행됐다. 경기 중계를 맡은 ESPN 해설자는 “우승호보 1순위였던 자기 나라 팀이 떨어진 후에도 열정을 갖고 다른 나라 팀들에 응원을 보내주는 독일국민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 잡았던 월드컵 우승을 놓친 미국의 실망감은 독일 국민들의 그것보다 더 컸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선수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는 표정들이었다. 일본의 우승에 대해 “우리가 패해야 했다면 그 상대는 일본이기를 바랐다”고 말하는 데서는 성숙함이 배어났다.
분노하고 분통해 하기보다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며 다음을 기약하는 선수들과 국민들의 모습은 왜 이런 나라들이 선진국 소리를 듣는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고 기술이 조금 발달했다고 그것이 곧 선진국을 뜻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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