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한국에서 들려온 두 가지 소식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하나는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이 260원 올라 시간당 4,580원으로 결정됐다는 소식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의 생계비가 214개 도시 가운데 19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뉴스다.
최저임금은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능력을 지켜가면서 가족을 지속적으로 부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최소한의 생존 임금이다. 1894년 뉴질랜드 정부에 의해 처음으로 시행됐지만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대공황을 겪은 미국이 1938년 ‘공정노동 기준법’을 마련하면서부터이다. 이 법은 최저임금 제정취지를 “남녀 노동자의 노동 노력에 합당한 임금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런 취지와 달리 최저임금이 노동 노력에 합당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은 갈수록 명백해 지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한국의 최저임금을 주 40시간 노동으로 계산해 보면 월급 총액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영국 런던과 맞먹는 생활비가 드는 서울에서 이런 월급을 가지고 생활하라는 것은 존엄성을 포기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최근 살인적으로 오르는 물가 때문에 실질임금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미국이라고 해서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캘리포니아의 현 최저임금은 시간당 8달러이다. 주 40시간씩 꼬박 일해도 주거비와 식비를 감당하기에 벅찬 액수다. 그래서 일부 지자체들이 도입하고 있는 것이 ‘생활임금’이다. 최저임금에 더해 자식들의 교육을 감당하고 최소한의 문화수준을 누릴 수 있는 액수를 지급하자는 것이 생활임금이다.
생활임금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어바인이다. 어바인 시정부는 시간당 13달러가 넘는 생활임금을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생활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기업들은 시가 발주하는 어떤 공사에도 입찰할 수 없다.
그러나 기업들은 경쟁력 약화와 실업 증가를 이유로 들며 반발한다. 이번에 한국의 최저임금이 노동계의 요구인 5,000원선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결정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자들의 가처분 소득을 늘려줌으로써 경기를 오히려 촉진시키며 실업률 증가 주장 또한 근거 없다는 것이 정설로 자리 잡고 있다.
경기침체 속에서도 대기업들의 금고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현금으로 넘쳐난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의 임금은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부자와 대기업에 대한 감세 폐지 논의가 나올 때 마다 이들이 내미는 반대 논리는 “부자들의 돈은 밑으로 흘러 내려와 경제를 살찌운다”는 ‘낙수효과론’이다. 그러나 날로 벌어지는 계층격차는 이런 주장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의 동반성장위원회가 들고 나온 ‘이익 공유제’는 모두가 고민해 봐야 할 화두라 생각한다. 대기업들이 거두는 이익의 일부를 하청업체들과 나누려는 자세를 가지지 않는 한 대부분이 하청업체 근로자들인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질 가망이 거의 없다. 제도적인 조치를 취해 돈이 위에서 밑으로 제대로 흘러내릴 수 있도록 할 때에만 진정한 의미의 낙수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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