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한국의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이 시조는 고려 말 문신 이조년(李兆年)의 다정가(多情歌)다. 그는 5형제의 막내였다. 그의 형들의 이름은 이백년(李百年), 이천년(李千年), 이만년(李萬年), 이억년(李億年)이었다.
그의 둘째 형, 그러니까 이천년의 손자가 어찌된 연유인지 모르지만 중국으로 건너간다. 그의 이름은 이영(李英)이고, 그 4대째 후손의 이름은 이성량(李成梁)이다.
그는 척계광과 함께 명대(明代)의 가장 탁월한 무장으로 이름을 드날린다. 요
동총병관에 올라 요동을 22년간 지키면서 숱한 전공을 세웠고 그 전공으로 영원백(寧遠伯)에 봉해진다.
훗날 청(靑)을 세운 누루하치를 어릴 때 거두어 기른 사람이 바로 이성량이다. 또 그의 집안에서는 여러 명의 장군이 나와 일세를 풍미했다.
정작 한국인에게 더 잘 알려진 인물은 그러나 이성량 보다는 그의 맏아들 이여송(李如松)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 지휘관으로 조선에 출병한 게 그였기 때문이다.
이여송의 당시 직함은 계주, 요동, 보정, 산동의 제군을 통솔하는 제독이었다.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휘하 병력을 거느리고 조선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것이다.
이 조선출병의 선발대를 맡은 인물은 그의 동생인 여백(如栢)이다. 그 밑의 동생 여매(如梅)도 함께 출병했다. 이성량의 세 아들이 나란히 조상의 나라 조선에 출병했던 것이다.
90세가 넘도록 장수한 이성량은 당시에 생존해 있었고 조선으로 출병하는 아들 삼형제에게 조상의 나라 조선강토 수복에 힘쓰라고 간곡히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여송은 그 같은 내용의 서신을 부친이 보내온 것을 밝히면서 “집안 어르신의 가르치심이 이러하시니 어찌 조선을 위해 전력을 다하지 않겠는가”고 조선 사신에게 다짐한 것으로 이조실록은 전한다.
한국계 미국인인 성 김, 한국 이름으로는 김성용씨가 주한미대사로 내정됐다.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런 그가 LA 카운티검사생활을 거쳐 외교관으로 변신해 6자 회담 특사를 지내다가 마침내 주한 미국대사로 발탁된 것이다.
한국계로서 주한미대사로 추천됐던 인물은 그가 처음은 아니다. 워싱턴주 상원의원 신호범씨도 한 때 그 최종 후보에까지 올랐었다. 어쨌든 이번 성 김씨의 발탁은 한미 외교사에 있어 하나의 사건이다.
누구보다 한국의 정서를 잘 이해할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 정부는 상당한 기대를 거는 눈치다. 미주 한인사회의 기대도 여간 높은 게 아니다. 특히 LA 한인사회로서는 낯이 익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제 2의, 제 3의 성 김씨가 계속 배출되기를 기원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