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아보타바드 이제 우리는 그대를 떠나네 / 그대 아름다운 경관에 나 고개 숙이네//
그대의 바람소리 다시는 내 귀에 닿지 못하리 / 슬픔의 눈물 몇 방울은 그대에게 바치는 선물 // 이제 나 그대에게 무거운 마음으로 작별을 고하네 / 그대의 추억 절대로 내 마음에서 꺾이지 않으리”
파키스탄 북동부의 휴양도시 아보타바드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시 ‘아보타바드’의 끝부분이다.
아보타바드는 한국으로 치면 강원도 설악산 부근의 어느 도시쯤 될 것 같다. 카시미르 인근 해발 4,100피트 고산지대의 자연경관 빼어난 도시이다. 기후가 좋아서 파키스탄 내에서는 대표적 여름 관광지이지만, 외부 세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도시였다.
그 무명의 도시가 갑자기 유명해졌다. 지난 2일 오사마 빈 라덴이 그곳에서 사살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그리로 쏠렸다.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살아왔을 주민들의 삶은 이제 전같이 평온하지만은 않을 조짐이다.
‘아보타바드’는 ‘아보트(Abbott)’와 ‘아바드(Abad)’가 합쳐진 이름이다. 아보트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19세기 중반 그 지역을 통치했던 영국군 장교의 이름이고, 아바드는 삶의 장소라는 의미. 1853년 아보타바드라는 이름으로 도시가 만들어졌다.
영국으로 귀국한 후 기사 작위를 받은 제임스 아보트 경은 식민지 인도에 흠뻑 매료되었던 것 같다. 인도 전통복장을 하고 초상화를 그리게 했을 정도였다. 8년을 살았던 아보타바드에 대한 애정은 특히 각별해서 그곳을 떠날 때의 심경을 시로 남겼다. 위의 시 ‘아보타바드’는 아보트 경이 쓴 시이다.
“나 처음 여기 오던 날을 기억 하네 / 달콤한 아보타바드의 공기를 냄새 맡던 그 날을”로 시는 시작된다.
이후 160년 역사 동안 도시는 교육의 도시, 군사도시, 관광의 도시로 자리 잡았다. 파키스탄의 육군사관학교 격인 군사 아카데미와 의과대학 등 수준 높은 교육기관들이 있고, 군 기지가 있어서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다.
빈 라덴이 은신하고 있던 저택은 사관학교나 군 기지와 불과 몇 분 거리 - 아보타바드가 세상과 뚝 떨어져 평화로운 휴양도시로 남을 수 없는 이유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빈 라덴의 은신 사실을 몰랐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어린아이도 믿기 어려운 일이다. 크지도 않은 도시에서 일반 주택들보다 8배나 큰 대저택이 갑자기 들어섰다면 눈길을 끌지 않을 수가 없다.
빈 라덴은 파키스탄에서 은신한 것이 아니라 일부 세력으로부터 적극적 보호를 받아왔을 것이라는 분석이 무게를 얻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인도네시아의 알카에다 지도급 인물 하나가 아보타바드에서 체포된 일도 있었다.
아보트 경이 보기에 ‘꿈같았던 곳’ 아보타바드의 운명이 바뀌게 되었다. 알카에다의 근거지로 의심 받게 된 이상 예전의 한갓진 산골도시로 남을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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