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가족 일이라 해도 저렇게까지 흥분하진 않을 텐데…”
지난주부터 한국을 온통 뒤흔들어 놓은 서태지의 결혼·이혼 소식에 대한 주변의 반응이다.
가수 서태지와 배우 이지아가 아무도 모르게 미국에서 결혼하고 이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의 신문, 라디오, TV, 인터넷 할 것 없이 모든 매체들은 이 내용으로 도배를 하고 있다. 지난 며칠 이 소식 때문에 보궐선거 열기가 주춤 했을 정도라고 한다.
미주 한인들, 특히 서태지가 데뷔하기 이전에 미국에 온 중장년층은 이런 분위기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그가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우상 같은 존재라는 점을 십분 감안한다 해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연일 핫뉴스가 되니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치다’는 것이다.
“가수가 결혼을 하면 하는 것이고 이혼을 하면 하는 것이지 웬 소동인가” “스타들이니 화젯거리야 되겠지만, 결국은 그 사람들 사생활이 아닌가”라는 말들을 한다.
매스컴의 호들갑도 대단하지만 더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서태지 팬클럽의 반응. 그들은 말 그대로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오늘은 과연 잠을 잘 수 있을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 “별일 아닙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등 자신의 혈육이라도 이 보다 더 할 수는 없을 정도로 속을 끓이고 있다. 일반인들의 삶에서 대중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일면이다.
‘팬‘이라는 말은 19세기 미국과 영국에서 야구광을 일컫는 말로 처음 등장했다. ‘fanatic(열광자, 광신자)’의 준말로 사원에 소속된 물건이나 사람, 즉 신도들을 일컫는 라틴어 ‘fanaticus’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종교적으로 지나치게 몰입한 상태를 의미하다가 지금은 특정 문화나 인물에 대해 열광하는 사람들을 의미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소위 ‘팬‘이 등장한 것은 1960년대. 나훈아와 남진의 팬들이 시초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어 1980년대 조용필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면서 팬은 ‘오빠부대’의 모습으로 구체화했다.
그 후 한국 대중문화에 일획을 긋고 지금의 팬 문화를 태동시킨 인물이 바로 서태지라는 평가이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은 한국 대중가요에 새 시대를 연 사건으로 기록된다. 군사독재가 막을 내리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시점에 서태지가 선보인 자유와 파격은 대중들, 특히 청소년들에게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매니아나 팬덤이라는 보다 강력한 팬클럽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서태지의 비밀 결혼· 이혼을 ‘메가톤급 충격’이라며 망연자실하는 그룹은 대부분 그 시절의 청소년들. 이제 30대인 그들에게 서태지는 세상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우상이자 환상이다. 90년대 후반 미국에 잠적했던 서태지가 2000년 다시 컴백했을 때였다. 당시 한 대학생이 한국의 신문 인터넷 판에 올린 글을 보면 분위기가 짐작된다.
“그가 돌아왔다.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가슴은 먹먹해오고 머릿속은 하얘지는 것 같다. 요즘 며칠 토플 공부를 하느라 TV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도서관에서 신문을 보다 어제 그가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기사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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