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인 사람들은 한다하는 사대부 집안의 부녀자들이었다. 상황은 시시각각 죄어들어 오고 있었다. 오랑캐가 쳐들어와 도성이 함락될 상황을 맞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날 모임의 주제는 하나로 모아졌다. 오랑캐가, 다시 말해 저 야만스런 청나라 병정이 들어 닥쳤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하는 것으로.
죽음이 있을 뿐이다. 오랑캐에게 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자결해 몸을 지키겠다는 거다. 서로에게 다짐하듯 물었다. 답은 한결 같았다.
한 젊은 부인에게 같은 질문이 던져졌다. 그 부인의 대답은 조금 달랐다. 그 때 가 보아야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힐난이 쏟아졌다.
사대부 집안의 여자가 어찌 그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개중에는 정조
관념조차 없다느니 하는 심한 욕설을 면전에서 퍼붓는 사람도 있었다.
그 날이 마침내 현실로 닥쳤다. 그 상황에서 감연히 오랑캐를 꾸짖었다. 그리고 자결함으로써 몸을 지켰다. 가장 먼저 정절의 본을 보인 여자는 다름 아닌 욕을 먹었던 그 여자였다.
큰 소리 치던 여인들 중 상당수는 구차히 목숨을 구걸했다. 청나라로 끌려가는 치욕을 감수하면서까지.
픽션이 아니다. 병자호란 때 실제로 있었던 비극의 한 단편이다.
말이 앞선다. 아니, 말뿐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한국의 정치권이 보이고 있는 모습이다.
선거가 다가온다. 대통령 선거든, 국회의원 선거든, 심지어 보궐 선거든 관계없다. 저마다 선심성 공약이다. 나라 곳간이 거덜 나든 후손들에게 빚더미만 넘겨주든 아랑 곳 없다. 오직 표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나오고 있는 말이 망국적 표퓰리즘이다.
이게 그러나 정치권에만 국한된 일일까. 역사의 인물로 보기에는 아직 현실과 닿아 있는 느낌이다. 그런 인물에 대해 역사라는 이름으로 거침없는 단죄가 이루어지고 있어 하는 말이다.
한일합병 때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란 절규를 남긴 장지연 선생의 독립유공자 서훈이 취소됐다. 말년의 친일행적이 그 이유다. 인촌(仁村) 김성수 선생도 같은 운명을 맞을지 모른다는 보도다. 이들이 과연 친일 매국노일까.
말은 항상 쉽다. 뒤에 앉아 앞서 간 사람들의 행적을 비판하기는 더더구나 쉽다. 그러나 혹독한 시절을 직접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시대의 아픔을 절감할 없다.
누군가의 말대로 친일(親日)도 배일(排日)도 할 수 없었던 것이 식민지 백성이 맞은 가혹한 환경이었다.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갔다. 그런 그들이지만 삶의 한 단편에는 티가 묻어 있었다.
문제는 그 작은 티를 문제로 삼아 거침없는 단죄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용감함과 비겁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런 인간의 내면에 대한 성찰은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은 정의의 화신인 양 마구 돌을 던진다.
이를 감성적 표퓰리즘에 휘둘리는 집단의식의 발로라면 지나친 지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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