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면 누구나 자녀가 착실히 학교에 다녀 좋은 성적을 내고 좋은 학교에 들어가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범생이 역사적인 인물이 되거나 역사적인 업적을 내는 일은 드물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링컨과 워싱턴 모두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워싱턴은 농장주에서 측량기사, 영국군 장교의 보조로 전투에 참가했다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고 링컨 역시 통나무집에서 태어나 독학과 막노동, 거듭된 사업 실패 등 변호사가 되기 전 잡초 같은 인생이었다.
이런 남다른 역경과 고통을 겪어야 큰 인물로 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모양이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의 IT 혁명을 주도한 인물을 들라면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첫 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그 중에서 게이츠는 하버드를 중퇴하고 차고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잡초류를 닮았지만 변호사 아버지가 사업 자금을 대줬다는 점에서 세상의 온갖 역경을 겪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에 비하면 잡스는 그야말로 광야에서 맨 손으로 일어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리아계 회교도와 미혼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 입양돼 대학 문턱은 밟아봤지만 오랫동안 방황의 연속이었다. 서예를 배우는가 하면 콜라 빈 병을 모아 밥값을 벌기도 했고 한 때는 불교에 빠져 중이 될 결심까지 했다. 그의 결혼식에 주례를 맡은 것도 일본 승려였다.
이런 다양한 경험이 훗날 그의 성공의 거름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몰랐으리라.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액과 애플사를 차려 PC 혁명의 기수가 됐던 그는 경영진과의 불화로 10년 만에 쫓겨나지만 곧 루카스필름으로부터 그래픽스 그룹(후에 픽사로 개명)을 인수하면서 화려하게 복귀한다. 이 회사는 디즈니와 함께
‘토이 스토리’ ‘토이 스토리2’ ‘니모를 찾아’ ‘라타투이’ ‘인크레더블’ 등 만화 영화의 고전을 잇달아 내놓는다.
그러나 그의 명성을 IT 업계의 선두주자로 끌어올린 것은 90년대 말 그가 애플사로 돌아오면서부터다. 그는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를 연이어 출시하면서 애플을 21세기 IT 혁명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확고히 일으켜 세웠다. 그는 기업이 성공하려면 단지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제품이 아니라 사랑에 빠질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줬다. 간결하면서 아름답고 편리한 애플 제품에 중독된 소비자가 하나둘이 아니다. 디자인에 편집증적 집착을 보이는 그는 ‘단순의 미학’을 서예와 불교의 직관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IT 역사를 다시 쓴 천재 잡스가 3번째 병가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는 이미 수년 전에도 췌장암과 간 이식 수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바 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애플 주가는 한 때 8% 폭락하며 시가 총액 중 200억 달러가 사라지기도 했다. 그가 조만간 다시 복귀할 수 있을지, 그가 없는 애플이 잘 돌아갈 수 있을지 애플 팬과 IT 업계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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