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의 풀 한포기까지 다 기억합니다. 우리 해병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곳인데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입니까….”
그는 서해의 외로운 섬에서 후배 해병들이 당한 참담함을 떠올리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연평도 포격사태를 신문에서 접한 그는 하루 종일 일손을 놓고 울면서 지냈다 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해병대를 사랑하는 군인이었다. 버지니아 웃브리지에 거주하는 박호철 예비역 해병 대령(58세). 1977년 해사 31기로 임관해 2000년 예편할 때까지 23년 동안 그는 해병이었다. 그리고 연평도에서 1984년부터 88년까지 작전참모(소령)로 꼬박 3년을 복무했다.
“미 8군과의 협력문제로 연평부대에 영어가 되는 장교가 필요했습니다. 빽없고 힘없는 제가 뽑혀 1년 약속하고 갔는데 3년을 채웠어요. 당시만 해도 연평도 군인들은 가족을 동반하지 못해 22개월이나 아내와 가족을 보지 못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아웅산 사태가 터지자 대북 기습공격을 위한 1개 소대 규모의 특수부대(일명 망치부대)를 연평도에 잠시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시 해병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건 한국군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응축돼 터져 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K-9자주포와 대포병 레이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데 대한 비판에 3군 간의 알력과 파워게임에 연유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가 1997년 콴티코 미 해병대 사령부에 연락장교로 오기 전에 군 수뇌부에 빌면서 K-9자주포를 넣어달라고 했습니다. 대한민국 군은 육해공군이 나눠먹기 싸움하는 곳입니다. 해군에 소속된 해병대는 그나마 해군 눈치부터 봐야 합니다. 그러니 녹슨 해안포처럼 오래되고 쓰레기 같은 무기만 줘서 그런 일이 생긴 겁니다.”
그는 북한의 도발에 제대로 반격과 보복 대응을 하지 못하게 한 군 지휘체계에 대해서도 분노를 쏟아냈다.
“우리 군인이 죽어가는 위기상황에서 현장 지휘관은 물론 군 수뇌부도, 장관에도 대응할 재량이 없습니다. 그러니 책임지기 싫은 거죠. 링 위의 권투 선수가 얻어맞고도 링 밖의 코치에게 일일이 물어보고 때리는 꼴입니다. 군대가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그는 격정에 흔들리는 듯 잠시 머리를 만졌다. 지난해 뇌수술을 받은 후 아직 후유증이 남아 있다고 했다. 몸도 쇠약해졌다 한다. 그는 대령으로 예편한 후 미 이민을 택했다. 2년간 세탁소에서 일하다 2002년 웃브리지에 세탁소를 매입해 직접 운영하고 있다. “죽어라 일만 한다”는 그는 연평사태를 보며 답답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 한국군의 문제를 끄집어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 예비역 해병 대령은 한국군의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복잡하고 낡은 군 편제와 만연한 행정주의, 소홀한 사회적 처우를 들었다.
“한국 국방력은 육군에 치우쳐 군 간의 균형발전을 가로막고 있어요. 또 불과 20-30분 거리의 좁은 지역에 사단, 군단은 물론 군 사령부까지 있습니다. 지휘체계가 쓸데없이 복잡하고 똥별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 유사시 대응력이 늦고 군 운영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어요.”
그는 특히 한국군이 행정주의로 흐르고 있는 점을 강하게 질타하며 장성들부터 특권의식을 버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군이 전쟁을 염두에 두지 않고 행정으로 흘러 장교들은 진급에만, 하사관들은 복지에만 신경 쓰고 있어요. 장교식당에 가보면 대화내용이 전부 골프예요. 군에 골프장이 왜 필요합니까? 장교들이 썩었어요. 또 장성들은 부하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주니까 자기 집 전화번호도 제대로 몰라요. 미군은 군복이 이등병이나 장군이나 다 같아요. 계급장만 다를 뿐이죠. 먹는 것도 같습니다. 장교나 장성들이 유교문화의 특권의식부터 버려야 한국군이 삽니다.”
박 전 대령은 군인에 대한 낮은 인식과 예편 후 소홀한 처우도 군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군 통수권자는 파병 등 국방에 관한 대승적인 문제만 챙겨야 하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작은 전술까지 챙겼어요. 그러니 장성들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면서 손을 비비기 시작했습니다. 정치와 군은 분리돼야 하는데 말입니다. 군사정권을 지나며 국민들이 군을 보는 인식이 형편없어져 이제는 예편을 해도 사회에서 안 써줍니다. 그러니 군 재임 중에 막 챙기는 풍조가 생깁니다. 지휘관 출신들의 충성심과 리더십이 사회에서 활용돼야 군인들이 중심을 잃지 않습니다.”
박호철 전 대령은 마지막으로 한국군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군인정신이 회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병들은 투철한 군인정신을 회복해야 하고 군은 이스라엘처럼 선제공격 능력을 갖춰야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강성대군이 될 수 있다”며 독일 지휘참모대학 유학시절 한 독일 장성이 반전 데모대에 한 말을 상기시켰다. “오래 불이 나지 않는다고 소화기를 없애고 소방서를 없애서는 안된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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