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뭄바이의 상징이 되었다는 다바왈라 (Dabbawala). 집에서 만든 점심 도시락을 회사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120년의 역사를 지녔고 하루에 20만개의 도시락을 5,000명의 다바들이 식스시그마 (160만 중에 하나의 실수를 할 확률)를 달성하며 지속하고 있는 배달 서비스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등 많은 MBA 스쿨에서 케이스 스터디를 하러 찾아왔고, 영국 찰스왕자부터 각국의 미디어들이 찾아와 취재를 하며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그 점심을 담아 나르는 실제 ‘깡통’을 들고 나타난 다바왈라를 통해 직접 듣게 될 줄이야.
편안한 청바지와 분홍색의 캐주얼 셔츠를 입고 시원한 민머리에 샤프한 인상을 지닌 38세의 에어아시아X의 사장. 스탠포드대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고 맥킨지 컨설팅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전혀 다른 일인 항공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그. 서너 명으로 시작한 사업은 3년 만에 직원 천명이 넘는 기업이 되었다. 동종업계 모든 이들이 실패할거라던 일을 성공으로 이끈 그의 스피치를 유튜브가 아닌 라이브로 듣게 될 줄이야.
어제 참석한 이노베이션 마케팅이라는 주제로 열렸던 워크샵의 내용이었다. 양장에 히잡을 쓴 여성부터 터번을 쓴 인도계 남성, 듬성듬성 보이는 번듯한 정장 차림의 백인들. 200여명의 참석자 중에 한국인은 딱 나 하나. 비현실적인 느낌이 여전히 가시지 않는 이곳은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다.
LA에서는 직항도 없어 어딘가를 거쳐서 와야 하는 이곳에 온지 한달이 조금 넘었다. 정말 알 수 없는 게 사람 일이라고 내가 이곳에 이렇게 살고 있으리라고 일년 전에 상상이나 했겠는가.
쿠알라룸푸르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LA의 다양함과는 또 다른 다양함을 지닌 도시다. 아시아라는 친숙함도 있지만, 동시에 매우 낯선 곳이기도 하다. 중국계, 인도계, 그리고 본토 말레이계 이렇게 세 민족에 뿌리를 둔 나라, 그래서 그들 간의 이질성과 갈등도 느껴지며, 급속하게 이뤄지고 있는 세계화는 이곳도 예외는 아니라서 외국인들의 모습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회사 동료의 동생은 싱가폴에 살고, 다른 동료는 홍콩으로 직장을 옮기려 하고 있으며, 또 다른 동료는 호주에서 변호사를 하다가 이곳 광고회사로 전직을 했다. 미국 본사와 싱가폴에 있는 아시아 총괄 지사와도 함께 일을 하며, 글로벌 브랜드, 아시아 브랜드, 현지 브랜드가 광고주들이라 말레이시아뿐만 아니라 주변국들, 그리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는 말이 한때 유행했던 적이 있다. 아마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쯤이었던 것 같다. 학교의 교실과 도서관의 구석자리가 한없이 답답했던 그때, 정말 어딘가로 막 뛰쳐 나가야할 것만 같았던 그즈음의 난 저 흔해빠진 말에 조금은 흥분했었던 것 같다. 한때 나를 흥분시켰던 그 말대로 난 세계 속 어딘가에서 또다시 새로운 일과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지내고 있다.
그러나 감수성이 무뎌진 것일까. 정신없이 일은 하고 있지만, 마음을 설레게 했던 그 옛날의 흥분은 남아 있지 않다. 생활의 형태는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삶의 본질은 어느 곳도 다르지 않더라는 것. 한국이나 미국이나, 그리고 동남아 한복판 이곳 말레이시아도. 꽤 오랜 시간 머물었던 다른 ‘세계’들을 통해 배운 건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이 세상에 차고 넘치는 현상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 전만큼 흥분할 일이 없는 건 아쉽지만, 또 그만큼 흔들릴 일도 준 셈이다. 나이 듦과 경험이 가져다주는 큰 혜택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김진아 / 광고전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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