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타향 땅 외로운 나그네 되어(獨在異鄕爲異客) 또 맞는 명절, 가족 생각 더 사무쳐(每逢佳節倍思親) 멀리 고향 형제들 높은 곳에 올라(遙知兄弟登高處) 수유 꽂고 놀다 한 사람 비었다 하겠네(遍揷茱萸少一人) 성당(盛唐)의 시인 왕유(王維)의 망향 시다.
음력 9월 9일은 중국에서 중양절이라 해서 춘절(설날), 중추절에 버금가는 명절이다. 이날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높은 산에 올라 수유를 머리에 꽂고 국화주를 마시며 놀면서 액운을 물리치고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홀로 일찍 고향을 떠났다.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 또 다시 어김없이 그 날이 다가온다. 가을의 그 명절이다. 문득 외로움이 더해온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떠들썩거리던 명절날 그 추억의 파편들이 새삼 짙은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황혼 무렵 한 나그네가 홀로 강가 정자에 오른다. 저녁 안개가 자욱이 서린 강상의 풍경. 나그네는 불현듯 버림을 받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절로 탄식이 나온다. ‘해는 지는데 고향은 어드메뇨’(日暮鄕關何處是)란 최호의 절귀가 그것이다.
누구에게 버림을 받았는가. 사람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이었다. 초년에 고향을 떠났다. 마음속에 자리한 고향은 그렇지만 상당히 구체적으로 마음에 남아 있다. 그러나 사실은 별로 구체적이지 못하다.
자주 다니던 골목길, 빨간 벽돌로 지은 교회건물. 이런 것들에 대한 기억은 생생하다. 실제로 고향을 찾게 되면 그러나 크게 실망하게 마련이다. 그리움으로 사무치게 했던 고향이 겨우 이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공간은 그 공간이다. 그러나 그 공간이 더 이상 아닌 것이다. 시간 속에 녹아들어 모든 것은 사라졌다. 시간으로부터, 공간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이다. 때문에 진정한 방랑자라면, 진정한 순례자라면 결코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않는다고 한다.
계속 타지를 떠돈다. 그러면서 한없이 상념에 잠긴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과 고향에 대한 생각은 점점 깊어진다. 뭐랄까. 아무리 멀리 떠난다 해도 집에 남아 있는 어머니가 항상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까.
먼 길을 떠난 사람만이 살던 집을, 고향을 간절히 그리워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멀리 떠난, 타향 체험을 한 사람만이 진정한 의미의 고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한가위다. 추석이다. 애써 강조해본다. 그렇지만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햅쌀로 송편을 빚고 기름 진 음식을 배불리 먹는다. 새 옷을 입고 례를 드린다. 그 모든 것이 이제는 빛바랜 사진 마냥 기억의 저 편에 머물고 있어서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 이민자들에게 한가위는 무엇일까. 새삼 질문을 던져본다. 그것은 나눔의 날이 아닐까. 불법체류자가 되어 가족이 흩어져 있다. 불경기 속에 계속 움츠러들고만 있다. 그런 분들과 함께 한다. 물질을 나눈다. 마음을 나눈다.
그리고 망향의 외로움을 서로 나누는 그런 날 말이다. 이주노동자들이나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과 哀歡(애환)을 같이 나누고 위로하는 날로 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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