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에 사시는 분에게 나는 참으로 말 안 듣는 이웃일 것이다. 이 집에 처음 이사 왔을 때 한인이 많지 않은 동네에서 바로 옆집에 한인이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그러나 그 반가움이 수그러든 것은 그 분이 교회에 나가자고 권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친절한 그 분은 매번 만날 때마다 교회에 나가자고 권유했고, 그럼에도 나는 매주 일요일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으니 참 말 안 듣는 고집 센 이웃으로 오해받아도 할 말이 없다.
종교를 놓고 담하나 사이에 끊임없는 일 방향 구애가 계속되던 즈음 오바마 대통령이 이슬람교인으로 오해받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고, 교회에 가면 한글로 가르치는 아이들 교실이 있다는 이웃의 얘기에 솔깃할 즈음 플로리다의 한 목사가 9.11을 기해 코란을 불태우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설문조사에서 미국인 4명중 1명은 오바마 대통령이 기독교인이 아닌 이슬람교인으로 믿는다는 거였다. 급기야 백악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기독교 신자임을 다시 한번 확고히 밝히는 성명을 내는 해프닝을 벌였다. 본인이 기독교인이라고 하는데도 남들이 이슬람교도라고 믿는 것은 도대체 어떤 상식에 근거하여 작동되는 논리일까? 미국을 공격했다는 혹은 자신의 종교와 다르다는 이유로 코란을 불태우겠다는 결정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기독교인에게 이슬람교인이라고 딱지를 붙이는 것은 그 사람이 비기독교인이라고 딱지 붙이는 것 보다 때로 더 공격적일 수가 있다. 차라리 나처럼 종교가 없거나 기독교와 무관한 것이 더 나은 이유는 미국 사회에서 이슬람교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의되는 위협감이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어야 대통령 신분도 보장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일종의 사회적 압박의 발현을 보면서, 종교의 울타리 안에서는 때로 맹목적 오해와 편견, 폭력이 통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미국에서 가장 첨예한 문제는 인종차별이라고 대부분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보이는 폭력이요, 흑과 백이 명백하게 선언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기에 사회의 공적영역에서 합리적 소통 이 가능하다.
하지만 종교 문제는 드러나지 않기에 더 치명적이며 내재적인 대립이다. 이는 주류의 패권의식을 드러내는 암묵적인 사회적 스탠드라는 점에서 두려움을 준다.
종교가 인류의 역사, 인류의 유전자에 뿌리내린 이유는 현실의 불안을 이기고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는 심리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모든 종교는 각기 다른 신의 모습에서 갈라지지만, 자기 수련 및 용서라는 주제에서 다시 만나고, 사랑이라는 큰 주제 앞에 합쳐진다.
그래서 종교가 수련, 용서, 사랑 등과 멀어진 모습을 보일 때면 종교가 없는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1968년 이탈리아 영화 중 제목이 멋들어진 영화가 있다. ‘신이 당신을 용서하시길… 하지만 나는 못해(May God Forgive You…. But I Won’t)’라는 이 영화가 오늘의 미국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기를 신에게 빌어보고 싶다.
문선영 / 퍼지캘리포니아 영화사 대표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