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전 남편 회사에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이 특채로 입사했다. 그 회사를 다니다 MBA 과정에 진학하느라 퇴사한 형의 추천을 받은 것이었다. 대졸 학력에 불과한 그는 같은 직장 내 대학원졸 2년차 직원보다도 더 높은 연봉과 직급으로 계약을 했다고 한다.
신입사원치고는 똑똑하고 일을 잘 한다는 남편의 말을 백분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의 형을 총애하던 임원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쯤 되면 그는 분명 특별대우를 받은 셈이고, 요즘같이 실업률이 높고 취업에 예민한 때에 그 신입사원에 대해 불만을 가진 회사 사람들이 많을 듯싶었다.
그런데 그 상황이 남편 회사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같은 팀에 있는 대학원졸 2년차조차도 그 신입사원이 경력도 없고 대학원도 안 나왔지만 회사 측이 연봉과 직급을 책정할 때는 분명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무 문제없이 받아들인다고 한다.
직원들이 기본적으로 남이 얼마를 받는지 어떤 직급을 받는지 관심 자체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실력이 있으면 직급과 연봉이 높을 수 있다는 것을 당연시 하는 듯 하다는 것이 남편의 의견이었다.
내 경우, 직장생활 3년차 때 같은 팀에 들어온 2년차 경력사원이 나보다 연봉을 높게 받는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후 큰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연봉 조정시기가 얼마 안남은 때여서 실질적으로는 몇 달 동안만 적은 봉급을 받았던 것이지만, 그게 단 하루라 하더라도, 합당한 이유 없이 경력도 더 적은 남보다 내가 월급을 적게 받는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직속팀장과 인사부장을 면담해 불만을 토로 했고 평균 연봉 인상폭보다 많은 폭의 인상을 약속받은 후 정상 업무를 볼 수 있었다.
과거의 나를 돌이켜보니 나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주 많이 아픈 사람이었다. 어릴 때는 할머니가 오빠나 남동생에게 남자라는 이유로 나보다 용돈을 더 주셔서 배가 아팠고, 나보다 공부를 못했던 친구가 바뀐 대학입시제도 덕에 운 좋게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배가 아팠고, 일도 못하는데 상사에게 잘 보이고 줄만 잘 타서 승진하는 선배를 보며 배가 아팠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누군가가 이득을 볼 때면 나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더라도 ‘불의’라는 이름으로 매도해 버리고 예민하게 핏대를 세웠던 것 같다.
남편 회사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그들과 나의 생각 차이는 어디서 오는지 궁금해졌다. 사촌이 땅을 샀을 때 배가 아픈 것은 아마도 사촌이 아니었으면 내가 그 땅을 샀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가슴 깊이 어디쯤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땅의 주인이 사촌 아니면 나라는 논리는 세상이 사촌과 나뿐인 우물 안 세상이라는 착각으로 가능했었던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남편 회사 직원들은 자원도 풍부하고 땅도 넓은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이 대부분이기에 나보다 세상을 넓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도 화가 나지 않을 수 있나 추측도 해본다.
사촌의 땅 때문에 배가 아픈 건 사촌이 땅을 사건 말건 관심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정이 느껴져서 좋다. 대신 좁은 마음으로 배 아파하며 끙끙 앓기 보다는 세상을 넓게 보고, 사촌이 내 땅을 빼앗은 것이 아니며, 사촌이 아무리 땅을 많이 산다고 해도 내가 노력한다면 내가 살 수 있는 좋은 땅은 충분히 남아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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