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 깁슨, 누구는 그를 용서할 수 없다고 하고 또 누구는 그가 불쌍하다고 한다. TV, 라디오, 인터넷 그 어디에서도 요즘은 멜 깁슨이 대세이다. 엔터테인먼트 뉴스와 관심이 일반인들의 생활 속에 깊게 자리 잡은 미국인들에게 멜 깁슨의 사건은 중요할 것이다. 가정폭력, 인종차별이라는 이슈도 무게감을 더할 것이니 멜 깁슨이 화제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양상을 다시 짚어 볼만한 이유는 이 사건을 둘러싼 미국인들의 반응과 그 저변에 깔린 미국인들의 양면성에 대한 발견 때문이다. 멜 깁슨 사건을 보며 나는 미국에 대해 새로운 의문을 갖게 되었으며, 이런 똑같은 상황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었을까 하는 가상 시나리오를 써보는 상상도 했다.
첫째, 미국은 개인의 연애사에 간섭하지 않는 사회적 기준을 여전히 멋지게 보여주었다. 한국에서라면 당연히 이 사건의 시발은 여자 친구를 위해 이혼을 불사했던 멜 깁슨의 연애사에서 비롯되었다고 전제할 것이다.
7명의 아이를 낳은 조강지처를 버린 그가 여자 친구에게 이렇게 공격을 당하는 것은 자업자득이라는 가차 없는 충고를 넘어서 재기하지 못할 치명적인 여론 테러를 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이를 두고 멜 깁슨의 도덕성을 판단하거나 그의 커리어를 트집 잡지 않았다.
둘째, 오히려 미국인들의 심장을 건드린 사건의 시발은 현재 여자 친구에게 폭행을 가했다는 여자 측의 증언과 녹음 테입에 기록된 깁슨의 인종차별적 언어폭력에서 찾을 수 있다. 깁슨은 인터넷을 떠도는 녹음 파일에서 여자 친구에 대한 폭행을 부인하지 않았으며, 그가 퍼붓는 멕시칸과 흑인을 향한 폄하의 욕설은 귀를 의심케 할 정도의 수위이다.
그는 이미 유대인을 향한 인종차별적 발언의 전력과 함께 미국 최고의 인종차별주의자가 되어 버렸다. 또한 여성에 대한 폭력은 그 이유를 막론하고 철저히 처벌받는 미국 사회에서 그를 향한 구제의 손길은 없어 보인다. 폭력의 근원을 파악하고 사법적으로 처리하기 보다는 ‘부부싸움’이라는 기준으로 가정 내에서 해결할 것을 권고하는 한국의 풍토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셋째, 그럼에도 미국의 합리성과 이성에 근거한 그들의 관념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순간을 바로 언론의 센세이셔널리즘이 제공하고 있다. 양측의 어느 하나가 모르는 상황에서 녹음되는 것은 캘리포니아에서는 엄연히 불법이며, 녹음 테입은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못한다.
미국에서 국민의 알권리와 프라이버시가 상충할 경우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는 프라이버시를 보장해 주는 쪽으로 많은 손을 들어왔다. 그러나 깁슨의 녹음 테입은 그가 모르는 상황에서 녹음되었고, 녹음 내용은 각 미디어에 유포되었으며, 그들은 이것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해 냈으며, 인터넷을 통해 무한 속도로 공유하였지만, 미국인들 사이에서 이에 대한 불만은 의외로 잠잠하다. 프라이버시 때문에 이웃끼리 분쟁이 많은 이 나라에서 멜 깁슨의 테입이 유포되고 재생산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도 하지 않는 미국인들이 의아하기만 할 뿐이다.
합리적이고 개인의 사생활 보호가 최고의 가치라고 자부했던 미국인들에게도 언론의 센세이셔널리즘 뒤에 숨고 싶은 욕망이 더 지배적일 때가 있나 보다. 한국과 다르지 않은 이 양상을 앞에 두고, 미국은 여전히 배워야 할 과제인가 보다고 생각되었다.
문선영 / 영화마케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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