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포츠 경기를 그리 즐겨 보는 편도 아니며, 특히 축구처럼 득점이 많지 않은 경기를 1시간30분이나 봐야 한다는 것 자체가 고역인 사람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전에는 말이다
올해 한국팀의 16강 진출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한 선수로 박지성 선수를 꼽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스 팀도, 나이지리아 팀도, 심지어 우루과이 팀도 한국이 무서운 이유는 ‘박지성 때문’이라고 했다.
2002년 그 조그맣고 여드름 투성이었던 박지성 선수를 기억하는가? 물론 포르투갈 전에서 ‘A급수준’이라는 골을 넣기도 했지만 히딩크 감독이 발탁하기 전에는 국내에서도 크게 인정하지 않던 선수였다. 게다가 키도 작지, 체구도 작지, 외모로 축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화장품 모델이던 안정환 선수와 슬금슬금 비교가 될 때는 안타깝기도 했다.
그를 평가하는 전문가들은 박지성이 "영리한 플레이를 한다. 공간 이해도와 활용력이 높다. 순간 판단력이 뛰어나고 전술적이다" 등을 장점으로 꼽고 있다. 신체적인 단점에 얽매이지 않고 - 심지어 그는 평발이다 - 남들에게 없는 자신만의 무기를 잘 선택했다. 그리고 강한 정신력으로 살아남았다.
2002년 미국 골드컵 때의 일화가 있다.
"당시 나는(박지성) 왼쪽 다리에 부상을 입어 텅 빈 탈의실에 혼자 남아 있었다. 잘할 수 있는 기회를 조금이라도 많이 보여야 할 그 중요한 때에 하필이면 부상이라니… 그때 어디선가 히딩크 감독이 나타나 이렇게 이야기 했다. 너는 정신력이 훌륭하다. 그런 정신력이면 반드시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나는 힘이 솟았다. 정신력,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나였지만 오래 전부터 내가 믿어왔던 것은 죽는 한이 있어도 버티겠다는 정신력이었다"
그런 그가 8년 뒤 국가대표팀의 주장이 되었다. 2002년 이후, 네덜란드의 아인트호벤과 영국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그는 예상치 않았던 무릎 부상 때문에 성적이 부진했고 본인에게 공만 가면 야유를 받았던, 본인이 회고하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들을 잘 견뎌냈다.
그리고 이제 한국팀이 주장이라는, 특히 성실함과 도덕성이 크게 요구되는 자리에 서서 팀의 완벽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주장으로서 갖는 책임감도 엄청나겠지만 침착함과 평정심을 잃지 않고 흔들림 없이 팀 전체를 잘 이끌어간다.
또한 그는 매번 인터뷰에서 "한명의 선수를 막는 것보다 팀을 어떻게 봉쇄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자신의 기량을 돋보이게 하는 것보다 팀의 성적에 집중하는 주장의 면모를 보여줬다. 또한 이긴 게임 뒤에 선배들과 동료들의 수고를 치하하고 자신의 공을 겸손하게 언급하는 모습은 언론을 의식한 가식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신중하고 진실한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 동안의 힘들었던 시간을 통해 인격이 한층 더 성숙해진 느낌마저 든다.
여전히 체구는 작지만 지금 한국팀에서 그의 존재감은 엄청나다. 그가 필드에서 보여준 실력과 카리스마에 반한 팬들은 여드름 자국이 채 가시지 않은 그를 이미 가장 섹시한 국가대표 선수로 뽑았다.
2002년 박지성은 히딩크라는 감독에게 발탁되어 알려진 행운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10년 그가 이렇게 빛이 나는 것은 그날의 영광에 취해 자만하지 않고 끊임없이 수련하며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힘든 시간을 묵묵히 견뎠기 때문이다.
결과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겠다. 당신 덕분에 우린 지난 몇 주간 충분히 행복했다.
지니 조 / 라이프대 마케팅 교수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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