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사무실에서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한 선배가 내게 오더니 흥분하며 말했다. “한명숙이 서울시장이 될 것 같아!” 그때부터 궁금증을 가지고 지켜 본 서울시장 선거의 개표 상황은 말 그대로 박빙이었다. 비록 막판 뒤집기로 인해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여성 후보가 한국의 심장인 서울의 시장이 될 뻔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 정치에 ‘여풍’이 얼마나 커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미국 정치에서도 여풍은 거셌다. 지난 주 수퍼화요일,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연방 상원의원 공화당 후보로 각각 이베이와 휴렛패커드 최고경영자 출신인 멕 휘트먼과 칼리 피오리나가 당선된 것이다. 물론 그들이 11월 본선에서 정치경력이 화려한 민주당 정치인들과 대결해서 승리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남녀차별’이라는 단어가 사전에서도 없어져야 할 정도로 구시대적인 개념이 되어버린 이 미국 땅에서도, 한 주에서 여성들이 주지사와 연방 상원의원직을 모두 차지할 가능성만으로도 큰 관심이 되고 있다.
한국은 이번 지방선거부터 선거구마다 광역/기초의원 후보 중 1명 이상을 여성으로 공천하도록 의무화했고 그것이 이번 선거에서 여성들의 당선이 급증하게 된 큰 이유라고 한다. 한편 진작 이런 장치가 있었다면 한국 정치에 여풍은 더 거세지 않았을까, 또한 한국 정치가 더 빨리 발전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런 제도적인 장치가 있어야만 여성의 정치참여가 보장된다는 사실에 좀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선거에서 성별 때문에 혜택을 입는 것 역시 성별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것만큼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자격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천에서 탈락하는 것도 안 될 일이지만, 자격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데도 여성들의 표심을 생각해서 여성후보가 공천을 받았다면 그것 역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이다.
2008년 대선 부통령 후보였던 새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를 계기로 여성을 대하는 시각을 바꾸게 된 공화당이 캘리포니아의 주지사와 연방상원 의원에 처음으로 여성 후보를 나란히 뽑은 데는 여성 유권자들의 마음을 공략하려는 전략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의 두 여성 후보가 자신들이 여성임을 부각시켜 여성 유권자들에게 감정적으로 접근한 대신 ‘성공한 기업인’의 이미지로 강인함을 부각시켜 수퍼화요일의 승리자가 된 것을 보면, 11월 본 선거에서 그녀들이 당선될 경우 그 이유는 그녀들이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듯이 캘리포니아주도 성공적으로 이끌어주길 바라는 투표자들의 마음에 현역 정치인들에 대한 반감이 반영되어서 일 것이다.
‘세상에는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모르던 아주 어린 시절에 나는 “크면 뭐가 되고 싶니?” 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대통령이요”라고 큰소리로 대답했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같은 질문을 받아도 다른 대답을 했던 것을 기억하면, 그 즈음부터는 여자 대통령이 되는 것은 막연히 ‘안 되는 일’로 인정해 버렸던 것 같다.
내가 자라온 시대와는 달리, 세상에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도 어린 소녀들이 “제 꿈은 대통령이 되는 거예요”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그러려면 먼저 그 아이들에게 ‘여자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을 실제로 보여줄 수 있도록 한국이나 미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실비아 김 / 팬콤 광고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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