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시작됐다. 한 학기가 끝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학기가 끝나고 시작되는 방학이 주는 쾌감은 ‘전후관계’의 유쾌한 예이다. ‘시작과 끝’처럼 익숙한 전후관계의 다른 예를 들자면 ‘만남과 헤어짐’ ‘갈등과 화해’ 같은 것들로 한쪽을 이겨내거나 인내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관계들이다.
이처럼 ‘-와/과’는 두 가지 이상의 것을 비교하거나 혹은 한쪽의 무게를 가늠하기 위해 맞은 편 저울무게를 헤아리듯 어떤 것이 기준하는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격조사이다. 저울의 비유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이 격조사는 비슷한 중량의 두 가지를 엮거나 비교하는 역할을 한다. 이 단어의 가장 큰 특징은 ‘사과나 배’의 예에서 쓰인 조사 ‘-나’처럼 선택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와/과’가 잇는 요소 중 하나를 현재 겪고 있거나 혹은 이미 겪었다면, 대칭의 대상은 불규칙한 순서의 차이만을 지닌 채 비슷한 무게감으로 언젠가 겪게 될 거라는 무언의 약속을 받은 셈이다.
방학이 시작되고 잠시 동생이 살고 있는 시카고에 와있다. 여행의 설렘이 시작이었다면, 난 또 시작과 끝이라는 공식에 맞추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만은 없는 여행의 끝을 벌써부터 아쉬워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여행의 끝은 동시에 일상의 시작이라는 잦게 반복되는 전후관계의 순환성을 떠올리게 한다. 언젠가 또 다시 시작될 여행의 시작을 꿈꾸게도 하면서 말이다.
’-와/과’를 대신할 영어단어를 꼽자면 자동적 떠오르는 건 물론 ‘and’이다. ‘-나’의 ‘or’은 선택을 의미하는 한글 속 쓰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and’는 아니다. 훨씬 더 다양한 쓰임새를 갖는다. ‘-와/과’가 비교의 역할을 한다면 ‘and’는 연결의 의미가 강하다. 즉, ‘and’는 ‘-와/과’처럼 비교하는 대상이 가지고 있는 경중의 유사함을 알리기보다는, 연결하는 사물이나 사람의 밀접함 정도를 나타낸다는 뜻이다. 이 외에도 ‘and’는 문장 사이에 삽입되어 일의 시간순서를 나타내기도 하고, 수식이 덧셈임을 알리기도 하며, 반복이나 더러는 인과관계를 표현하기도 한다. 넓은 범위로 이 모든 쓰임을 종합해보면 원형의 특징을 갖는 ‘와/과’와는 다르게 ‘and’는 직선형의 단어이다.
과거 어느 교수의 탈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네 전통탈의 모양과 그 해학성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참 많은 수의 한국의 탈은 자신이 웃고 있거나 반대로 보는 이를 웃기는 모양을 하고 있다는 내용을 덧붙였던 것이 기억난다.
탈의 표정 속에, 또 짧은 격조사 ‘-와/과’ 속에 숨겨놓은 선조들의 지혜가 참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은유적 지혜처럼 우리는 기뻐 환하게 웃는 지금 자신의 모습으로 동시에 유사한 무게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의 잊고 있던 웃음을 일깨우기도 하고, 혹 잠시 힘든 시간을 지날 때엔 맞은 편 누군가의 웃음을 보며 긍정적인 인생순환을 떠올리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천천히 맞닥트리는 감정의 종류와는 무관하게 인생의 순간순간을 최대치로 즐기고 누리는 여유로움을 배워나간다는 건 때때로 고되지만 즐겁고 결국엔 유익한 일이다.
6월이다. 일년의 반이 끝나가고, 또 다른 반년의 시작이 가까워지는 때이다. 시간은 한결같이 한 방향으로 직선을 그리며 흐르고, 그 시간의 경계 안 또 다시 만나게 될 수많은 순환의 요소들은 앞으로의 삶 이곳저곳에 여전히 비슷한 모습으로 산재해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한 음절의 단어 속에 숨은 지혜는 우리로 두려워할 것이 없다 한다. 게다가 과거 실패의 경험이 줄곧 아쉬움으로 남아있었다면 더더욱 크게 기대해도 좋다고 한다. 그 순간의 기다림은 흡사 희망이라 부를만하기 때문이다.
노유미 / CSUN 대학원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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