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어버이날에 한복을 입고 부모님께 절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당시 직장에 다니셨던 엄마는 그 시간에 오실 수가 없었다. 못 오시는 걸 뻔히 알면서도 혹시 오실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문 쪽을 힐끔힐끔 바라보며 속속 도착하는 다른 엄마들 사이에서 내 엄마를 애타게 찾았다.
"곧 오실거야, 조금만 있으면 오실거야…" 속으로 주문을 외웠지만 끝내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거의 울 지경이 되어버렸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 엄마가 나와 친구 앞에 앉으셔서 "내가 엄마나 마찬가지니까 아줌마한테 절해도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그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절을 하려고 한복을 입었는데 막상 절 받을 엄마가 없던 그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몰라 나는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그 이야기를 들으신 엄마는 얼마 안 있어 직장을 그만 두셨지만, 그 기억은 늘 나의 어린 시절 한켠을 차지하며 한동안 어두운 색으로 남아 있었다.
지난주에 아들이 다니는 유아원에서 편지가 왔다. 어머니날 티파티를 하려고 하니 꼭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이었다. 편지를 받는 순간 나는 "아들이 드디어 꽃을 달아주는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반가움 보다 여기에는 꼭 가야한다는 긴장감에 사로잡혀 스케줄을 비우고 기다렸다.
당일이 되자 나는 아침부터 들떠 있다가 시간에 딱 맞게 도착했다. 서너 살 된 아이들이 엄마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싶었는데, 엄마들의 입장과 동시에 "Surprise!"하며 뛰어나온 아이들은 한 줄로 서서 노래도 불렀다가 율동도 했다가 하며 어머니날을 위해 준비한 것들을 차례차례 보여주었다.
아이는 꼭 어릴 적 내 모습처럼 맨 앞도, 맨 뒤도 아닌 아이들 사이 적당한 곳에 서서 선생님의 노래와 율동을 반박자 쯤 늦게 따라하고 있었다. 아이가 집에서 혼자 흥얼거리던, 무슨 노래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노래도 아이들 틈에서 부르는 걸 들어보니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로 시작하는 나도 알던 노래였다.
공연이 끝나고 각자 종이접시에 과자와 샐러드를 담아 엄마에게 대접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접시 가득 푸짐하게 담아오는 아이들 사이로 우리 아이가 보였다. 아들의 접시에는 방울토마토가 한개, 샐러리가 한개, 그리고 과자 한개가 넓은 접시 안에서 뒹굴뒹굴 구르고 있었고, 아이는 그걸 떨어뜨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오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어머니날 선물이라며 준 목걸이는 중간에 뭐가 떨어졌는지 만들다만 모양이었지만 엄마한테 주려고 열심히 하나하나 붙였을 아이를 생각하니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반
엄마는…, 나의 엄마는 그 때 어떤 마음이셨을까. 어린 딸이 엄마에게 절을 하는 시간에 못 간 엄마는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어쩌면 엄마를 애타게 찾던 딸보다 더 타들어 가는 마음으로 직장에서 발을 동동 구르셨을 지도 모르겠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안 있어 직장을 그만 두신 것을 보면 그것이 엄마에게도 큰 사건이었으리라.
어머니날은 그렇게 ‘감격스럽게’ 지나갔고, 남편은 아버지날에 아빠들을 초대하는 행사도 있는 지 궁금해 하며 나를 부러워했다. 이쯤에서 나도 그 예전 슬픈 기억 하나쯤 지워도 좋을 듯싶다.
지니 조 / 라이프대 마케팅 교수 /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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