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아니 대한민국의 외교 안보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천안함 사건의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력한 ‘용의자’인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으로 이명박 정부의 안보능력이 도마에 오른데 이어 이제 북한의 중국 방문으로 외교력도 시험대에 올라있다.
천안함 사건은 한국의 안보 능력을 의심하기에 충분한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다. 초기의 미숙한 대응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실망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가 중심을 잡고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조사가 마무리되고 결과가 나오면 이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국민이 만족할 만한 옵션이 많지 않다. 특히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이 밝혀져도 아니면 반대로 아니라는 결론이 나도 대응방법이 마땅치 않다는데 고민이 깊다.
또한 후진타오 주석과 정상회담을 마친 김정일 위원장이 예상대로 6자회담 복귀를 선언할 경우 한국은 곤혹스런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북한은 물론 중국과 미국을 고려한 외교안보 고차 방정식을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은 환영할 것이다. 한국인의 바람과는 달리 중국으로선 한국의 경제적 중요성이 매우 높아졌다 하더라도 북한을 쉽게 포기할 수가 없다. 중국이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국 정부가 유감을 표명했지만 중국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미국으로서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이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주장해 온 미국으로선 천안함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명확한 증거나 공식 발표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6자회담을 거부할 명분도 적고 중국의 체면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고 한국의 입장을 모른 채 하고 6자회담에 선뜻 나서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난처한 것은 한국이 될 것이다. 현 정부 들어 어색해진 중국과의 관계가 냉각될 조짐을 보이고 있고 천안함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을 비난할 수도 그렇다고 그냥 미국만 쳐다보고 있을 수도 없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가 좌고우면하지 말고 분명한 원칙을 세우고 밀고 나가는 뚝심과 전략이다. 또한 이를 든든하게 뒷받침할 수 있도록 국론을 통일해야 한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고 며칠 후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다. 정부와 여당은 물론 시민단체와 진보계 인사들을 만나면서 천안함이 가져온 최대의 피해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국론의 분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안함 사건 발생 후 국내에선 여러 가지 루머가 돌았다. 정부가 대응을 빨리 못한 건 미국 지뢰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했기 때문이라든가 군 참모총장들이 술에 취해 있어 지휘를 빨리 못했다는 식의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또한 보수계 인사들은 지난 10년간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퍼주기가 안보의식을 흐려 이러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한 반면 진보계 인사들은 현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이런 비극을 낳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수언론들은 북한의 소행임을 기정사실화 하면서 대북 제재론을 주장하는가 하면 진보언론들은 북한이 그럴 이유가 없다면서 항변하였다. 국가의 안보가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단합보다는 서로를 공격하기에 바쁘다는 느낌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이 난국을 헤치며 외교 안보 고차 방정식을 푸는데 있어 우선적으로 해야 할일은 정부의 신뢰를 회복하고 국론을 통일하는 것이다. 원칙을 정하고 신중하면서도 단호하게 대처할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대통령임을 자임하고 당선되었다. 하지만 대통령이란 자리는 경제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해졌다. 어쩌면 현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신기욱 / 스탠포드대 아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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