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미래가 안 보이는 직장생활에 질려, 얽히고 얽혀있는 인간관계에 치여, 미국 이민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면서 우리 부부가 미국으로 오게 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회사에 다니던 남편이 미국지사의 주재원으로 왔다가 미국 현지직원으로 재 채용되면서 영주권을 받게 된 우리 케이스를 듣더니, 자신은 그런 기회를 바라기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일단 미국에 관광비자나 학생비자로 들어와서 일자리를 찾아보면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리고는 미국 생활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얘기해주는 내게 그저 부럽다는 말만 반복했다.
10년 넘게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나는 숨 막히는 한국 직장의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백분 이해한다. 빠르면 9시 늦으면 새벽에 퇴근하는 일도 허다하고, 직원 회식이다 고객 접대다 해서 녹초가 되고, 주말에는 온갖 경조사, 집안모임을 챙기다 보면 자기시간이란 것은 상상을 할 수가 없다. 그런 한국에서의 삶에 비해 퇴근 후 매일 가족과 저녁식사를 함께 할 수 있고, 주말이면 가족이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미국의 삶이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것이 사실이다.
같은 경력에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들의 주당 근무시간 대비 주급을 비교해보면 미국은 ‘노동력에 대한 대가가 비교적 정직하게 지불되는 나라’라는 사람들의 인식 또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전에는 항상 양면이 있듯 미국 이민생활의 힘든 점들 역시 나열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것 같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없어 겪게 되는 외로움은 차치하더라도, 모국어가 아닌 영어가 주는 언어의 장벽은 기본이고, 영어소통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문화적 차이에 오는 시행착오들이 직장이나 생활 속에서 생계와 관련될 때는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한국이라면 식은 죽 먹기인 일들도 미국에서는 쉽지 않은 게 태반이라는 것도 반복 경험을 하게 되면 사람을 좌절시킨다. 미국에서 이방인처럼 살다가 가끔 한국을 방문해 거기서도 이방인임을 깨달을 때는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도 한다.
콩깍지를 쓴 상태에서 좋은 면만 보고 결혼을 했다가 결혼 후에 서로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 싸움이 잦아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민 온지 얼마 안된 우리 부부가 요즘 이민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일이 많아지는 것도 어쩌면 같은 맥락일지 모르겠다.
많은 대화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신혼의 위기를 극복하고 부부간의 신뢰를 쌓는 길인 것처럼, 이민생활에 더 잘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해 내면 언젠가는 미국 생활 오래하신 분들이 그렇듯 ‘한국 가서는 못 살 것 같아’라고 말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사람들 중에는 영어연수, 여행, 출장 등으로 미국에 잠시 체류하면서 동전의 앞면만을 보고 미국 이민에 대해 핑크 빛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한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지만 미국에서는 누릴 수 없는 것들과 한국에서는 누릴 수 없으나 미국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꼼꼼히 따져보며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그렇게 신중하게 결정해야만 실제 이민생활에서 어려움이 닥쳐도 적극적으로 이겨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비아 김 / 팬콤 광고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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