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을 내릴 것이냐 그냥 둘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명품제조업체들이 제품 가격 인하를 놓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이들 업체들이 장고에 들어간 것은 경기가 썩 좋지 않은 것과 관계가 있다. 업체들은 불경기를 감안, 가격을 내리면 제품을 더 많이 팔 수 있을 것이나 일단 가격을 내리면 원상 복구가 쉽지 않다는 점 때문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옷·술·구두 등 불경기 탓 매출 크게 줄어
가격 인하하면 판매량 대폭 증가 전망 불구
한 번 내린 가격 다시 올리기 어려워 고민
1년 전 노스트롬 백화점에서는 디자이너 앤이 루가 고안한 끈이 없으며 굽이 낮은 구두가 켤레 당 595달러에 팔렸다. 하지만 이번 시즌 들어 백화점에 진열한 이 구두의 가격은 400달러 미만으로 낮아졌다. 백화점 측은 “구두 가격이 내린 것은 과시적인 소비의 시대가 막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한마디로 설명했다.
가격이 내린 덕분인지 루가 디자인한 봄 상품 구두의 도매주문은 전년동기 대비 69%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은 노스트롬 백화점을 포함해 고급 상품을 취급하고 있는 업체에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그 고민은 ‘일단 가격을 내렸지만 다시 원래 상태로 올릴 수 있을까’로 집약된다.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두고 있는 주류업체 파티다 데킬라의 최고 경영자 게리 샌스비는 “고급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업체들이 가격을 인하하는 것은 그 제품을 몰살시키는 행위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일단 내려간 가격을 올릴 방법은 없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업체들이 매출을 올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은 제품 가격을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경기가 회복돼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기 시작할 때 불과 1~2년 전 30달러에 팔리던 제품 가격이 48달러로 오른 것을 보고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라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50년 동안 이 업계에 종사했던 샌스비 최고 경영자는 수차례에 걸친 불경기를 경험하면서 제품 가격 인하에 반대하는 확고한 견해를 갖게 됐다고 했다.
그는 다른 경쟁업체들이 행했던 가격을 내리고 코스코 혹은 샘스클럽 등 디스카운트 스토어에 제품을 납품하는 것을 지양했다. 대신 최고의 바텐더들과 협력, 병(750ml) 당 45달러가 넘는 파티다 데킬라의 새 틈새시장 개척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고급 바와 레스토랑에서 파티다 데킬라의 수요는 급증했고 샌스비 최고 경영자는 지난해 회사 매출이 대폭 늘어나는 기쁨을 맛보았다.
물론 샌스비 최고 경영자는 성공한 기업가로 어느 정도 튼튼한 재정적인 여유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그처럼 충분한 자금이 없는 신생 업체들은 어떤 전략을 가져야 할까?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는 시장조사업체 럭서리연구소의 최고 경영자 밀턴 페드라자는 “가격인하는 최후에 시도해야 하는 영업 전략”이라는 사실에 동의했다. 그의 업체가 실시한 조사 결과는 명품업체들은 생산량을 제한하는 한편 제품의 질을 높이고 소비자들의 호감을 얻는 일에 많은 돈을 투자함으로써 제품의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사업주들에게 틀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가질 것을 조언했다.
지난해 5월 챕터11 파산을 신청한 후 소유권이 바뀐 코네티컷주 댄베리 소재 목욕탕 설비업체 워터웍스는 최근 대량의 소비자들이 매우 희귀한 브랜드를 접할 수 있는 계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했다. 워터웍스는 블루밍데일·콜스백화점 및 베드, 배스 & 비욘드 등 대형 연쇄 소매업체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이들 업체 매장 내 자사의 브랜드를 취급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워터웍스의 최고 경영자 피터 샐릭은 “시장의 변화를 틈 타 새로운 시장 개척에 노력한 결과, 좋은 결실을 얻게 됐다”고 기뻐했다. 워터웍스는 사업 확장에 따른 자금을 마련키 위해 20개가 넘는 매장의 문을 닫는 과감한 선택을 취했다.
뉴욕의 고급 의류제조업체 화이트+워렌도 창조적인 영업 전략을 수립했다. 10년 넘게 고급 캐시미어 제품 메이커로 유명세를 떨쳤던 화이트+워렌은 캐시미어 제품의 가격은 유지하는 한편 오는 겨울 상품으로 인조 견사를 소재로 한 드레스와 상의를 출시키로 했다.
공동 창업주이며 현재 회장을 맡고 있는 수잔 화이트는 “5년 전 우리 고객들은 매장에 들어와 색상은 다르지만 똑같은 스웨터 10벌을 구입해 갔다”며 “고객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옷을 입지 않기 때문에 고급 스웨터와 함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상의, 드레스, 스카프 등을 취급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현실적인 경기 흐름에 맞게 생산 제품을 바꾸었으나 사업의 핵심인 캐시미어 제품 생산을 중단치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현재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재고를 치워 현금을 마련하는 것은 절대적이다. 예측이 가능한 단기적인 미래를 위해 할인 판매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고급 브랜드는 그 명성에 걸 맞는 소비자들의 신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경기가 회복되면 고급 브랜드의 수요는 보다 빠르게 창출될 것이다.” 럭서리연구소의 최고 경영자 밀턴 페드라자의 설명이다.
<황동휘 기자>
명품업체들은 경기가 나쁜 것을 감안해 제품의 가격을 내려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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