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살면서 배운 몇 가지 ‘오해’ 중 하나는 계산이 확실한 이곳에서는 절대로 뭔가를 무료로 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그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다면 자원봉사는 어떻게 되는 건가? 무보수 인턴십은 또 어떻게 되는 걸까? 인턴십이란 일을 배우게 해준다는 명분하에 노동력을 무료로 혹은 값싸게 이용하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하는 의문들이다.
3월4일로 예정된 LA 한국영화제를 앞두고 준비 작업이 한창 바쁘게 진행되고 있는 영화제 사무실을 며칠 전 방문했다. 가보니 영화제의 스탭은 18명인데 비해 자원봉사자들이 47명이나 되었다.
영화제 측은 앞으로 40명의 자원봉사자들을 2차로 더 모집할 계획이라고 했다. 현재의 47명에 40명을 합치면 영화제 기간 동안 87명이 자원봉사를 한다는 것이다. 어마어마한 숫자이다.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LA 한국영화제의 자원봉사 팀장이 남가주 출신이 아니라 한국에서 자비를 들여 이 영화제를 돕겠다고 온 자원봉사자라는 것이다.
자원봉사로 일하는 것과 직업으로 보수를 받으며 일하는 것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건 일하는 보람과 그에 따른 자발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진흥위원회 미주 사무실은 특히 인턴십을 많이 활용한다. 그래서 다른 회사나 기관에서 항상 받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인턴들이 그렇게 오랜 기간 남아 있을 수 있으며, 그렇게 열심히 일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대부분 직장인들은 5시나 6시, 퇴근시간이 되면 눈이 자연스럽게 시계를 쫓는다.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그렇게 휴식을 취함으로써 다음날 일할 수 있는 동력을 재충전하게 된다.
그런데 자원봉사자들이나 인턴들을 보면 퇴근시간에 별로 구애를 받지 않는다. 그 날의 일을 마무리하는데 더 자유롭다. 상사가 요구하지 않아도 일이 남아 있으면 자연스레 퇴근을 늦추고 무슨 신명이 난 듯 일에 몰두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들 두 그룹에게 일의 의미는 다를 수밖에 없다.
전자인 직장인들에게 일은 생계의 수단으로 경제적 의미를 갖는다. 후자의 경우 일은 자기투자 혹은 보람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전자에게 직장은 생계를 위해 몸이 묶이는 일터라면, 후자에게 그곳은 빨리 돌아가 배우고 싶은 일터가 된다.
자원봉사로 하는 일은 더 가치가 있고 보람이 있다는 것을 그들의 눈에서 읽을 수 있다.
대가 없는 봉사가 주는 기쁨은 누구나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평소 자원봉사를 해본 적 없는 사람들도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도운 적이 있다. 여기저기서 기꺼이 일을 도와준 적이 많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는 유난히 발걸음이 가볍다는 느낌으로 집으로 돌아간 적이 있지 않았던가. 도와주겠다고 약속하고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빙그레 웃어본 적이 있지 않았던가.
그 모든 게 자원봉사가 주는 기쁨이다. 자원봉사 증명서를 안 받았다고 우리가 자원봉사를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앞으로 87명이 될 영화제 자원봉사자들을 보면서 내가 88번째 자원봉사자가 될 것 같은 설렘이 있었다. 다음에 LA 한국영화제 사무실을 방문할 때는 봉사자들이 마실 커피라도 듬뿍 사가려고 계획 중이다.
문선영 / 영화진흥위원회 미주 총괄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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