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치료를 받으시고 병세가 호전되어 퇴원을 하시기는 했지만 거동이 몹시 불편하셔서 엄마가 24시간 간병을 하고 계셨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지 한 달이 넘어서야 비행기에 몸을 실은 데는 사실 엄마를 도와야겠다는 생각보다 생색 내보겠다는 계산이 앞섰다. 한창 말을 조잘조잘 해대는 세 살짜리 아들을 앞세워 할머니한테 재롱을 보이고 분위기를 띠워서 딸 노릇 손녀 노릇 했다고 생색이나 내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이 와중에도 친정에 아이를 슬쩍 맡기고 혼자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얄팍함도 있었던 것 같다.
엄마는 많이 지치신 듯, 오랜만에 만난 딸을 붙잡고 푸념을 하셨다. 너희 외할머니가 저렇게 쓰러지시고 얼마나 고집이 세졌는줄 아니. 원래도 한 고집했던 양반이다만 지금은 내가 아니면 목욕도 안하시려고 해서 다른 간병인을 쓸 수도 없단다. 잔소리는 또 얼마나 많은지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가 하마터면 풋 하고 웃을 뻔했다.
내가 친정에 갔다 오면 남편에게 하던 이야기와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어서 길어야 한두주 휴가를 내 다녀오는 친정이지만 그 얼마 안되는 시간 동안에도 엄마와 나는 늘 한번은 틀어졌다. 엄마는 오랜만에 보는 딸에게서도 고쳐야 할 점을 여지없이 찾으셨고, 나는 이 나이 되도록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진저리를 쳤다.
“엄마는 내가 늘 못마땅하시지. 나이가 서른이 넘었으면 포기할 만도 하지 않아? 어쩜 엄마의 잔소리는 10년 전이나 변함이 없으니. 게다가 나이와 고집은 정비례 하는 게 틀림없어…” 돌아오는 길은 매번 내가 남편을 붙잡고 이런 하소연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엄마의 잔소리는 외할머니 몇 배의 경지였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지만 반박할 시간을 주지 않아 한참 듣다 보면 귀를 막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런 엄마가 그의 엄마에 대해 똑같은 불평을 하시는 것을 들으며 난 “엄마랑 똑같네…” 하고 싶은걸 참았다. 당신이 받는 똑같은 스트레스를 나도 받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외할머니는 거동이 많이 불편하셨지만 다행히 생각보다 심각하지는 않았다. 세살된 아이도 열심히 ‘곰 세마리’를 부르며 비행기 티켓 값은 해줬고, 외할머니는 증손자 재롱에 많이 즐거워하셨다. 무엇보다도 외할머니는 뭐든 주고 싶어 하셨다. 항상 간단히 먹는 게 버릇이 되어 아침을 잘 못 먹는 나와 아이에게 많이 먹어라, 더 먹어라 하셨고 호주머니에 사탕이라도 하나 찾으시면 꼭 먹으라고 주셨다. 엄마의 도움이 늘 필요했지만 되도록이면 딸에게 피해가 안가도록 노력을 많이 하셨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면 최선을 다해 혼자 해보려고 하셨다.
엄마도 알고 계시리라. 일평생 딸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신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에 대한 반성, 그러면서도 늘 주기만 하는 것이 당연한 어머니의 모성을. 그리고 그것은 똑같은 모양으로 대물림 되고 있음을 나도 알 수 있었다.
외할머니를 닮은 엄마는 이번에도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셨다. 시간을 아껴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운동해라. 늘 부지런해라…
엄마는 나에게 늘 당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라고 하셨으나, 그 엄마의 딸이고 그 할머니의 손녀이니, 나도 엄마의 길을 그렇게 갈 수 있으려니 생각한다.
지니 조 /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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