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봄 학기 때의 일이다. 학년 초가 되면 으레 환경미화 주간이 있다. 새 교실을 깨끗이 대청소하고 시간표도 알록달록한 색상지로 만들어 붙이고, 커튼도 빨고, 창가에 화분도 올려놓으며 예쁘게 단장하는 때다.
나는 반장이었고, 환경미화라면 두 손 걷어붙이고 색상지를 고르는 일부터 꽤나 열심이었다. 그래서 항상 우리 반이 환경미화상을 받았다.
그 해에는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모든 반들이 유독 열을 올려 경쟁했던 것 같다.
심사 전날, 아무리 둘러봐도 다른 반과 큰 차이가 없다 싶었던 나는 가장 눈에 거슬리던 지저분한 책상들을 연초록색 한지로 덮어씌우기로 작정했다. 하얀 종이를 먼저 얹고, 연두 빛 한지로 덮고, 그 위를 비닐로 덮어 압정과 테입으로 깔끔하게 고정하는 것이었다. 서너 시에 시작한 작업은 혼자서 50개 책상을 다 싸려니 해가 지고 나서도 한참을 지나서야 끝이 났다.
손은 여기저기 압정에 찔리고, 테입으로 헐었지만, 그 날 아무도 없던 학교 건물과 텅 빈 운동장을 나서며 꽤나 뿌듯해 했던 것 같다. 예상했던 대로 우리 반은 또 일등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두컴컴해져 오는 교실에서 혼자 그 많은 책상을 싸고 있던 내 모습이 기이하게 여기지기도 한다.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이기려는 욕심에서였을까. 아니면 반 친구들에게 기쁨을 주고자 했기 때문일까.
몇몇이 도와주려 했지만 그 친구들이 하는 게 맘에 들지 않아 다 집에 보내고 혼자 하던 내 모습.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던 걸까.
그 후로도 내게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억지스러움으로 일을 끝내기 전엔 자리를 뜨지 않는다거나, 적당히 해도 되는 일조차 완벽하게 하려고 기를 쓴다거나, 내일 해도 되는 일을 미리 해야 맘이 편하다는 이유로 안 그래도 바쁜 하루를 더 바쁘게 만들곤 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참 미련스럽게 여기질 때도 많다.
그런데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서 난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다. 인생의 어느 시점까지는 이런 성격이 나의 장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공부나 직장생활에 있어서는 분명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그런 내 자신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성향은 지나친 책임감과 완벽주의에서 기인하며, 이로 인한 지나친 긴장은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런 긴장과 불안은 스트레스와 불면으로 연결된다. 두어 번 겪었던 원형탈모를 비롯해, 신경성 소화장애나 불면은 내가 줄곧 겪어왔던 것들이다.
흔히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 부모는 자식이 모든 일에 열심히 그리고 또 잘하길 바란다. 선생님들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옳은 말씀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에 노력하고 집중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는 일이다.
우리가 쏟을 수 있는 한정된 에너지를 모든 일에 다 백만큼씩 쓸 수는 없다. 나이가 들수록 책임져야 할 일들, 해야 할 일들이 늘어난다. 그 중에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가려내는 일은, 최선을 다하는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실수 없이 내일 있을 미팅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밤을 새가며 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다 정작 미팅에 늦을 수도 있다.
다 잘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무조건 열심히 할 필요도 없다. 정말 내게 중요하고, 또 진정 의미 있는 것에만 열심히 몰두하면 된다. 그 외의 것들은 적당히 해도 된다. 그래도 괜찮다 - 요즘 나 스스로에게 되새기는 말들이다.
김진아 / 캠벨 이웰드 시장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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