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미처 몰랐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책임져야 할 일들이 점점 늘어나는 과정이란 것을 말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었다고 해도 매번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고 꾸려나갈 때마다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하는 건 여전하다. 그때마다 책을 뒤적이기도 하고, 때론 선배나 전문가를 찾아가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최근 찬양대를 새로 조직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여러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자로 15년을 일해 왔지만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그동안은 기존의 성가대에 부임해 그 팀에 내 색깔을 입혀 나가는 것이 내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얀 종이 위에 새 그림을 그리라니, 좀처럼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엉켜버린 실타래를 풀기 위해선, 실의 끝, 즉 처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 나 역시 처음에서 출발하면 길이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기 전,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나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창조성’과 성가대원들을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해 내기 위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문득 책꽂이에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던 아직 읽지 못한 한 권의 책이 떠올랐다. 펠로십교회의 에드윈 영 목사가 쓴 ‘창조적 지도자’(The Creative Leader)라는 책이었다.

‘창조적 지도자’란 어떤 사람일까? 마음이 급했던 터라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지금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회로 이 교회를 성장시킨 영 목사를 통해 다시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영 목사는 “창조적인 생각을 실행하여 창조적인 해결책을 이끌어내려면 자신이 가진 전부를 쏟아 부어야 한다. 하지만 이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쏟아 부은 노력 이상으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음악을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바흐의 한 곡을 연습한다고 했을 때 악보를 읽어 내려가며 분석하는 일은 매번 어려웠다. 때로는 죽은 바흐에게 이 부분은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물어보고 싶을 때도 많았다.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음반을 틀어놓고 그들을 흉내를 내는 일은 쉬운 방법이지만, 내가 용납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한 프레이즈의 올바른 해석을 위해 사나흘씩 씨름해 가며 수십 가지의 서로 다른 해석을 놓고 고심하는 것으로 나의 길을 찾았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얻은 나만의 해석에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주었다. 종종 내가 존경하는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해석과 일치함을 느낄 때의 기쁨이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창조란, 나의 모든 것을 쏟아 붓기 전까지는 길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모든 것을 바쳤다 생각할 때에야 조금씩 답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창조적 아이디어를 세워나갈 지도자로서 성품은 어떠해야 할까? 아무리 좋은 생각이 있다 해도 존경 받는 리더의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지 않을 것이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서술한 공자의 성품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공자의 성품은 온화하고(溫) 어질고(良) 공경하고(恭) 검소하고(儉) 겸양의(讓) 인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기에 임금들까지도 존귀하게 여긴 나머지 공자를 찾아와 지혜를 구했다고 한다.

세계 정복을 꿈꾸었던 히틀러를 비롯한 수많은 지도자들의 초라한 최후를 보며 우리는 창조적이지만 성품을 갖추지 못한 그들의 모습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앤드루 박 / 음악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