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해도 어렸을 때의 나는 ‘천재’였던 것 같다. 학교에서 받은 아이큐 검사에서 전교 2등을 했고, 공부도 체육 빼고는 썩 잘했다. 피아노 선생님은 그녀가 가르쳐 본 중에 이렇게 뛰어난 아이는 처음 본다고 했고 미술학원에 가면 미술 전공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아이가 보여줄 수 있는 재능이라는 게 빤하지 싶은데 그 당시에는 머리가 총명하고 다방면에 재능이 있음이라고 적혀 있는 성적표를 받아도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불행히도 이런 재능은 후천적 게으름과 무관심으로 인해 점차 사라져갔다. 중간에 얘가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서…의 단계를 가뿐히 지나쳤고 어른이 될 즈음에는 아마 둔재를 면할 정도가 되어버린 듯하다.
게다가 분만할 때 맞는 전신마취제의 후유증인지 애 엄마가 되고 나서는 기저귀나 우유병 같은 것도 잊고 외출해서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몇 년에 한번 나올까 한다는 내 피아노 재능은 그보다 더 먼저 쇠퇴해 요즘은 동요 반주나 하는 신세가 되었고, 전공을 할 뻔했던 미술 실력은 유명 미술관에 걸린 그림을 봐도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어 작품 설명서를 꼭 찾아야 한다.
유학 와서 내가 문화적 쇼크보다 먼저 느꼈던 것은 지적 쇼크였다. 수업을 같이 듣는 아이들 중에 정말 머리가 좋구나 하고 감탄할 수밖에 없는 친구들이 있었다. 같이 공부하고 같이 노는 것 같았는데 성적은 명백하게 차이가 났고 매번 노력해도 그들을 이길 수 없었던 나는 살리에르의 마음이 되어 보통밖에 안 되는 내 재능을 실감했다.
대학원 때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우월한 인자를 갖고 확연한 재능을 보이는 이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무뎌진다고나 할까. 특별히 한 곳에 탁원할 재능을 보이지 않는 보통 밖에 안 되는 내 삶에 썩 만족하지는 않아도 심각하게 고민하지도 않는다.
천재라 불리는 음악가나 운동선수들, 혹은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연예인들이 간혹 외로움을 호소하며 평범한 삶을 선망하는 것을 볼 때면 아무 것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 어쩌면 그렇게 행복한 게 아닌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완벽한 재능으로 너무 빨리 달려 정작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숨이 차 아무 것도 못하게 되기보다 천천히 두리번거리며 넉넉하게 걸어가고 싶다. 한껏 한눈을 팔며 구경하다 마음에 드는 곳을 지나면 며칠 쉬어가고도 싶다. 설사 제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한 걸음씩 즐기면서 살아가는 삶이 왠지 더 나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게으른 내가 감당하기에는 세상 일이 너무나 바빠 지금도 헐떡거리고 있으니 어렸을 때 재능을 온전히 다 살렸으면 얼마나 더 바빴을까.
오늘도 보통 밖에 안 되는 재주로 글이나마 마감 전에 끝내려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는 게 힘들었지만 중간에 아이와 맥도널드에 가서 아이가 좋아하는 해피 밀을 사 가지고 왔다.
보통밖에 안 되는 엄마가 보통밖에 안 되는 글을 쓰느라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아들은 감자튀김을 먹으며 흔연스레 이야기 한다. “괜찮아. 엄마, 괜찮아…
지니 조 / 마케팅 컨설턴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