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국가가 어느 정도 빚을 지면 경제와 화폐가 가라앉다 망가질까. 이 문제는 재정 적자가 급증하며 국가 부채가 GDP의 98% 선까지 늘어난 미국에서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것이 더 큰 문제다. 일본에서는 수년 간 경기 부양을 위해 댐과 도로 공사에 돈을 쏟아 붓는 바람에 국가 채무가 5조달러에 달하는 GDP의 2배로 불어났다. 이는 사상 최고 비율이다. 이 빚에 대한 이자를 갚는 데만 국가 예산의 1/5이 들어간다. 미국은 아직 10%밖에 안 된다. 그럼에도 재무장관인 후지이 히로히사는 약 5,500억달러에 달하는 50조엔의 신규 국채를 발행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그는 “재정 적자는 작년 세계 불황 때문에 생긴 것”이라며 “지금은 과감하게 더 공채를 발행해야 할 때며 이를 특정 이익 집단을 위한 지출이라고 부르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경기 부양 지출 늘리다 국채 급증
장기적으로 엔화 약세 불가피
불안한 투자가들에게 급증하는 일본의 국채는 고민거리다. 나중에 가서 일본 국채에 대한 이자를 주지 못하게 되거나 일본 엔화의 가치가 폭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일고 있다.
후지이의 발언으로 국채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 때문에 10년 만기 일본 국채 가격은 0.087엔 내려가 99.56엔을 기록하면서 수익률은 6주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가 주는 위험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회의적이다. 연방 재정 적자가 올해 1조 달러가 넘고 앞으로도 당분간 매년 그럴 상황에서 지출이 과도할 경우 경제가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알고 싶으면 멀리 갈 것 없이 일본만 보면 된다.
비싼 사회 복지 예산 확충을 공약으로 내걸고 압승을 거둔 일본의 새 정부는 제2차 대전 후 처음으로 세수보다 많은 사상 최대의 정부 채권을 발행할 예정이다. 하이 프리퀀시 경제학 연구소의 수석 경제학자인 칼 와인버그는 “공공 부문 재정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고 있다”며 “재정 위기가 임박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본이 주는 교훈의 하나는 빚에 찌들린 정부는 운신의 폭이 좁다는 것이다. 도쿄에 본부를 둔 크레디 스위스의 채권 전문가인 후쿠나가 아키토는 “일본은 올해와 내년 더 많은 채권을 발행하겠지만 3~5년 후를 보면 이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며 “그 후 일본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별로 없다’고 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살펴보면 근본 원인은 무책임한 지출에 있다. 일본 정부는 전후 수천억달러를 고속도로와 댐, 항만 건설에 썼다. 이로 인해 일본 경제는 처음에는 빠른 발전을 이룩했고 자민당은 50년이나 집권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 주식과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서 일본은 장기 불황에 빠져 들었다.
지난 8월 압승한 민주당은 공공사업 예산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부양 자녀가 있는 가정에 대한 현금 지원과 무상 고교 교육 등 민주당의 복지 예산 확충은 예산 적자를 악화시킬 수 있다.
바클레이 캐피털 저팬의 채권 전문가인 모리타 초타로는 “세수가 요즘처럼 적은 때 민주당이 자기들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위험하다”며 “세계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일본의 부채 비율은 극히 높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관리들은 일부 지표로는 일본이 미국보다 낫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일본인들은 저축과 자기 재산이 많고 국채 중 외국인이 가지고 있는 것은 10%도 안 된다는 점이다. 여기 비해 미국 부채의 46%는 중국과 일본 등 외국인들이 가지고 있다.
또 하나는 일본 국채의 절반은 공공 기관이 가지고 있고 나머지는 법으로 장기 보유를 장려하며 은행과 펜션 펀드, 보험회사 등이 가지고 있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들이 갑자기 정부 채권을 파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전 재무부 고위 관리인 교텐 도요는 “정부는 한 주머니에서 돈을 빌려 다른 주머니에 넣어 두고 있다”며 “수치로는 많아 보이지만 좀 여유가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많은 분석가들도 불황 동안 일본도 미국처럼 빚 걱정은 덜 해도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출이 통제 불능의 상태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들 생각이다.
OECD의 일본/한국 전문가인 랜덜 존스는 “정부는 우선 국채 시장을 안정시킨 후에야 다른 일은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9년 OECD보고서는 일본의 재정 건전도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출을 줄이기 위한 믿을만한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길게 보면 거대한 일본의 자산 규모도 줄어들어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고령화의 빠른 진행으로 은퇴자들은 재산을 까먹고 정부는 의료비와 은퇴 연금으로 지출을 늘리고 있다. 공공과 개인 저축이 줄어들면 경상 수지 흑자도 적자로 돌아설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자금 부족으로 이자율이 올라갈 수 있다. 금리 상승은 이자 부담을 늘려 일본의 부도 위기를 불러 올 수 있다.
최악의 경우 투자가들이 발길을 돌리면 엔화가 폭락할 수 있다. 일본이 부채 부담을 줄이려 화폐를 찍어대면 인플레가 발생하고 엔화 가치는 더 떨어지게 된다. 최근 달러가 떨어지고 엔화가 상승하면서 잘못된 안도감을 주고 있다. 엔화는 최근 7개월래 최고인 달러당 89엔을 기록했다 소폭 하락했다.
이는 미국 금리가 0%에 가깝기 때문에 투자가들이 외국으로 발길을 돌리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는 엔화가 더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바클레이의 모리타는 “10~20년 후에는 일본 무역 수지는 적자로 돌아설 것이며 그 때 엔화는 약해질 것”이라며 “그러나 투자가들이 일본 앞날을 비관하면 그 날은 더 빨리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달러화의 기축 통화로서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지만 정작 빛을 잃어가는 것은 엔화다. 2009년 중반 엔화는 외국 비축 통화 중 3.08%를 차지했는데 이는 작년 3.29%, 1999년 6.4%에서 크게 줄어든 것이다. 2009년 중반 현재 달러는 외국 비축 통화의 63%를 차지하고 있다.
도쿄 다이이치 생명의 수석 경제학자인 구마노 히데오는 “엔화는 장기적인 하락세를 보일 것”이라며 현재 일본의 재정과 경제 상태를 볼 때 최근 엔화의 달러에 대한 강세는 “일본에 대한 긍정이 아니라 마지막 만세 소리”라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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