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때 아르바이트를 한적이 있다. 외국으로 유학을 가서 그곳의 문학박사학위를 따오고 그 분야에서는 손꼽히게 인정받는 분이 번역 하는 걸 원고지에 받아쓰는 일이었다. 한문장 한문장 그 분 입에서 나오는 말을 그대로 받아쓰는 일은 속기하는 일 만큼이나 빨라서 미처 그분의 말을 따라 쓰지 못하게 되면 잠깐만요, 잠깐만요, 하며 정신없이 손은 손대로, 머릿속은 머릿속대로 허겁지겁 바빴었다. 이렇게 며칠만에 한권을 마치면 곧바로 인쇄되어 시중 서점에 새책으로 나오곤 했다.
그런데 그 분이 손에 들고 번역하던 책은 원서가 아니라 일본책이었다. 아마 그 시절의 많은 분들이 그랬듯 일본어가 더 편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아르바이트덕에 용돈을 벌어 쓰면서도 손으로 쓰여진 문장을 하나 하나 씹으며 문장을 다듬지도 않고 이렇게 한번 입으로 주르르 나온 글을 그대로 출판해도 되는 건지 내가 조악한 번역물이 나오는 것에 일조를 한듯 자괴감도 들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내가 안 하면 그 어느 누구라도 할 것이라고 자위하기도 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정말 읽을 것이 없었다. 아버지가 책을 좋아하셔서 서재에 제법 많은 책이 있었지만 대부분이 일본 책이어서 내게는 소용이 없었고 기껏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류를 섭렵했는데 많은 번역물이 말도 안되는,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알수없는 해괴한 문장의 번역이어서 읽으면서도 늘 개운치 않았다. 그 후 미국에 와서 꽤 오랜 세월을 한국책을 모르고 살았는데 언젠가부터 한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더니 책이 흔해지고 그렇게 책의 홍수가 난 후 번역서들이 꽤 읽을만 해졌다.
최근엔 중국 소설을 몇 권 읽었다. 그 전엔 중국문학을 읽을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이즈음 중국소설을 몇 권 보고 중국 문화에 푹 빠졌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읽어본 모든 중국 소설은 우선 쉽게 읽힌다. 문장이 짧고 술술 읽히고 또 모든 상황이 금방 눈에 그려진다. 그리고 그 모든 중국 소설에는 그들이 겪어 낸 수세기에 걸친 가난과 폭정이 무대의 배경처럼 모든 글뒤에 펼쳐있다. 인육을 팔고 사는 일이 횡행할 정도 의 가난은 행여 조그만 권력이라도 있게되면 그것을 이용해 어떻게 해서든지 조금이라고 더 잘 먹고 잘 살아 보려고 온갖 비행을 저지르는데 그게 생존이라는 이름아래서는 합리화된다. 또 폭정의 학대 아래 시달리는 힘없는 민중 역시 목숨 하나 부지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비굴함이나 비열함도 부끄러움이 아니다. 게다가 그들이 겪어낸 문화혁명은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위해서 타인에게 얼마나 잔인할수 있는지를 명약관화하게 드러낸다. 참 처절한 상황들이다.
그런데 이런 모든 잔임함과 비열함을 고발하면서도 이상하게 그 모든 중국소설은 너무도 유모어러스하다. 살려달라고 엉덩이를 하늘로 뻗고 머리를 조아리는 무섭고 씁쓸한 상황을 솔기터진 바지사이로 들어나는 엉덩이를 묘사하면서 킬킬 웃게 만든다. 정말 히한한 민족이다. 게다가 웃읍기만 한게 아니라 웬지 힘없는 인간들 끼리 힘없이 당하면서 서로의 비굴하고 추레한 모습을 바라보며 싱긋 웃는데 그게 서로에게 힘을 되는듯, 인간미의 따스함까지 느껴진다.
가을이면 독서의 계절이라고 떠들어대곤 했는데 잘쓴 중국소설 신간이 하나 나와 읽는 재미 좀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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