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동안의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작은 콘도나마 내 집을 마련해 드디어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라는 것은 그 이름만으로도 머리 아픈 일이었다. 전기니 수도니 인터넷이니, 끊고 이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먼저 짐부터 싸두자 생각했다.
내가 방 두개짜리 아파트에서 나올 수 있는 짐의 양을 얼마나 과소평가 했는지를 깨닫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싸도 싸도 끝이 없어 보이는 이 많은 짐들이 어떻게 이 조그만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 놀라웠다. 짐의 양만으로도 질식할 것 같아 이삿짐을 빨리 쌀 수도 없었다.
유행이 지나 입지 않은 옷들, 사놓고 불편해서 신지 않은 신들을 비롯해 어디서 받았는지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식기들이며, 언젠가는 쓰겠지 아껴두던 전자제품, 나중에 잘 걸어놔야지 모아두었던 장식품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참으로 기가 찼다.
단언하건데 나는 결코 매주 쇼핑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주말이면 밀린 집안일이나 부족한 잠을 보충해야 하므로 밖에 나가서 한가하게 쇼핑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물론 새 옷이나 가방을 싫어하는 부류도 결코 아니지만, 나에게 그만한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가족들과 오붓하게 나가서 외식하는 쪽을 선택하는 편이다. 그런 내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느냔 말이다.
변명을 하자면 난 지난 몇년간 끊임없이 일을 했고, 남편과 아이를 위해 밥을 해야 했다. 그 때문에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런 구차한 변명을 앞세우더라도 짐은 너무 많았다. 더욱이 셀 수 없이 많은 내 짐들에 비해 남편의 것은 몇 박스 안돼 살짝 미안한 마음마저 들 정도였다.
문제는 구입을 많이 해서라기보다는 버리지 못하는 데에 있었다. 결코 처녀 때의 치수로 돌아가지 않는 허리 사이즈를 인정하지 못해 결혼 전에나 맞았던 옷들이 아직도 옷장을 채우고 있었는가 하면, 신으면 반나절도 못돼 발이 퉁퉁 붓는 신발도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신발장에 몇 년씩 고이 자고 있었다.
이삿짐을 싸면서 나온 이 ‘아이들’의 숫자는 엄청났고 짧은 시간 안에 어찌하지 못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들을 다 싸 짊어지고 이사를 왔다. 이것들만 없었어도 이사 시간이 두어 시간은 단축되었을 것이라는 남편의 불평을 뒤로한 채…
구호 단체에 기부했으면 누군가는 입을 수 있고 신을 수 있었을 물건들이 내 욕심 때문에 필요 없는 것들로 전락해 그저 옷장이나 신발장 한 켠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몇 달씩, 몇 년씩 쓰지 않는 물건이라면 없어도 사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다. 어쩌다 필요할 때가 와도 잠깐 불편하면 그만일 테다.
잘 버리는 것도 기술이다. 지금이라도 집안 곳곳을 정리하다 보면 존재조차 잊혀진 채 오랫동안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이 분명 보일 것이다. 과감히 정리하자. 눈 딱 감고 주위 사람들과 나누거나 필요한 곳에 보낸다면 깨끗하고 정리된 여백이 선물로 주어질 것이다.
잘 버리자는 지금의 다짐이 언젠가는 필요 없는 물건을 아예 사지 않는 현명함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의 나이가 몇 년 남지 않았다.
지니 조 /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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