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하루종일 정신없이 일하고 지친 하루. 어서 사무실을 박차고 나가고 싶다. 건물의 제일 꼭대기 층인 11층에서 출발한 엘리베이터가 중간 중간 멈추고 사람들을 태우는 1-2분이 짜증스럽다. 엘리베이터가 일층에 서는 순간 빠른 걸음으로 달려 나간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큰 유리문을 향해.
유리문은 6시 이후면 잠겨서 문 옆의 빨간 버튼을 누르고 0.5초 지난 후 밀어야 한다. 유리문을 향하던 중 목발을 짚고 걷는 젊은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제일 먼저 유리문에 도착한 나는 빨간 버튼을 누르고 0.5초를 기다린 후 문을 활짝 열고 문 뒤로 물러서서 기다린다. 대여섯 명이 다 빠져나가고, 몸이 불편한 그 사람이 통과할 때까지.
장면 2: 한가로운 일요일 오전. 느지막하게 일어나 주말마다 서는 파머스 마켓으로 간다. 싱싱한 과일과 신선한 야채를 사고, 독일 할아버지가 직접 구워 파는 길쭉하고 못난, 그러나 너무나 독일스러운 맛을 내는 베이컨 치즈 빵을 먹으러 라치몬트로 가는 길. 멀찌감치 차를 대고 천천히 걷는다. 조용하고 깨끗한 동네. 큼직한 개들을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 길가 테이블 옆에 유모차를 세워 놓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브런치를 먹는 사람들. 그렇게 사람 구경을 하다 한눈을 판 사이 휠체어에 의지한 할아버지의 손에 부딪친다. 그 손에 담겨있던 동전들이 떼굴떼굴 굴러서 땅바닥에 흩어진다. 도망치듯 그 자리를 뜬다.
장면 1은 엊그제의 나이고, 장면 2는 사오년 전쯤의 나다. 내가 그 사이 친절한 사람이 되었나?
친절 - 심리학에서는 친절도 하나의 방어기제라고 한다. 친절을 베풂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좀 더 돈독히 하려는 태도.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네가 감히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라는 말을 하기 위한 준비 단계란 것이다. 또한 친절은 이기심에서 생기는, 자신이 받고 싶은 보호와 관심의 투사에서 비롯되는 행동이라 한다. 남을 도움으로써 느끼는 뿌듯함도 결국 자신의 욕망 중 하나라는 것이다.
친절에 대한 이런 관점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면 참 맞는 말이다 싶다가도 정말 이렇게 따지고 분석해서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친절의 배면에 있는 여러 감정들을 다 떠나서 우리는 도움을 주고받으며 산다. 혼자서는 살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도움을 주거나 받기도 하고, 거절을 못해서 누군가를 돕게 되기도 한다.
그럼 엊그제 난 왜 문을 붙잡고 서 있었을까. 바로 공감이다. 살아가면서 겪는 아픔과 고통, 그리고 다양한 경험은 좀 더 높거나 낮은 음계를 감지할 수 있는 촉(觸)을 몸과 영혼 깊숙이 박아준다.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오래 아프지 않았다면 장면 1 속의 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몸이 아프거나 다친 이들을 보면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뼈를 다친 만큼 뼛속까지 와 닿는 공감이 있다.
그래서 5년 전보다 오늘,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친절을 조금은 베풀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공감이란 내가 아팠던 딱 그만큼 우리에게 주어지는, 삶을 좀 더 깊이 있게 만들어주는 능력이다. 적어도 나와 같은 범인에게는 말이다.
김진아 / 캠벨 이웰드 시장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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