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정부의 경제자문을 하던 어떤 대학 교수가 미국 방문길에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의 공직 기강확립이나 청렴한 공직자들을 찾는 노력은 마치 도로포장 작업처럼 보인다. 모두가 먼지 나는 길을 달려오다가 먼저 아스팔트길에 올라선 이들이 뒤에서 오는 이들을 보고 먼지 좀 내지 말라는 것처럼 보여서 기강확립하기가 어렵다.”
정계, 관계, 경제계, 학계, 예술계 할 것 없이 한국에서는 옛 어두운 시절의 관행이라는 것들이 있다. 어느 미디어에서 얘기했듯이 본국 사회 전체에서 압축 성장을 해왔고, 그 과정에서 법치주의 확립이 어려워지면서, 털면 누구나 먼지가 난다는 얘기가 법과 현실의 애매한 경계를 잘 설명한다.
본국의 장관들과 총리인준 청문회의 소식을 들으며 우리 미주 동포 여러분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하신 분들이 많지 않을까 한다: 미국에서 살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필자는 항상 미국에서 사는 가장 좋은 점이 보통사람으로 살아가는 게 쉽다는 것이라 믿고 있다. 여기에서는 아이들 공부시킬 때 위장전입으로 법을 어길 필요도 없고, 부동산 투기 거래에서 탈세할 유혹도 없고, 아들 가진 이들도 병역 기피의 멍에를 쓸 필요도 없고, 어디에 운 나쁘게 걸려서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에게서 뭇매를 맞을 걱정도 없고, 또 대학에 있는 이들이라면 미국 논문들이 학술지에 실릴 때의 무자비한 심사로 아예 ‘중복 게재’니 ‘짜깁기’니 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내게 되어 있으니, 자기하는 일을 제대로 하면서 보통사람 노릇하기가 쉬운 것이다. 사회가 개인을 비교적 정직하고 깨끗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미국에 와서 살게 된 동포들 중엔 내가 왜 여기 와서 이렇게 어렵고 외롭게 사는가 의문을 여러 번 갖지 않은 분들이 드물다. 사실 이곳에선 각이 진 모퉁이를 돌아가지 않고 가까운 길로 질러가고 대강 대강 살아가기가 어렵다. 세상 곳곳에 규칙이 너무 까다롭고 법의 집행이 추상같아서 보통사람들은 위장 무엇이니 탈세하기가 너무나 겁이 나서 아예 엄두도 못 내고 살게 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사는 것이 모든 면에서 그럭저럭, 대강 대강, 좋게좋게 살기가 비교적 쉽다. 국회 청문회에 들어가는 높은 자리에 대한 욕심만 없다면 하는 단서가 붙지만. 그리고 한국에서는 어거지란 것이 잘 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에서 제일 부끄럽다는 국회에서부터, 불법파업을 밥 먹듯 하는 대기업 노조들, 자기들 이해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전직 대통령까지 정부에 저항하란 얘기도 나오면서, 공권력을 모두가 우습게 본다.
물론 한국에서도 보통사람들이 많다. 지도층 인사들에서도 ‘보통사람’이 있었다. 야당 의원들이 아무런 도덕성에 관련된 먼지를 털어내지 못한 김태영 국방장관 지명자가 그런 이다. 그는 위장 전입도 없었고, 부동산 투기도 하지 않았고, 자식은 병역 의무를 마친 보통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이들은 사실 예외의 케이스로 보이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경우가 드물게 보이는 것은 보통사람으로 꿋꿋이 살아가는 것이 특히 한국에서처럼 남과 항상 비교하고 사회적 경쟁이 심한 좁은 곳에서는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때때로의 유혹을 이기는 확신이 있어야 하고, 배우자와 가족들도 보통사람의 인생관을 갖추고 있어야 가능한 게 아닌가 한다.
경제가 모든 곳에서 어렵고, 사회 전체, 거의 모든 이들이 어려운 요즈음이다. 앞으로 몇 년간 증권시장의 전망도 별로 좋지가 않고, 상업용 부동산이 다음에 올 어려움의 주범이 될 거라는 예상에다가, 실업문제도 가까운 장래에 좋아질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경제 얘기하기가 두려운 날들. 우리 보통사람으로 사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며 이 어려운 세월을 현명하게 넘겨야 할 것 같다.
이종열 /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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