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먼 브러더스 파산 1주년,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전 직원들
1년 전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한 후 리먼의 전 직원들은 평생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부분 화려했던 과거를 잊고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분노와 혼란 속에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신호탄으로 대규모 금융기관들이 사라지고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다. 다행히 대형 은행의 국유화, 엄격한 새 규제, 제2의 대공황 등이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리먼의 전 직원을 포함, 월스트릿 출신들이 재기하는 것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대부분 직업 잃고, 주식 잃고, 꿈 잃어
화려한 과거 잊고 현실에 맞추려 전전긍긍
톰 올퀴스트에게 지난해 9월9일은 어제처럼 생생하다. 리먼 브라더스에서 그가 감원당한 날이었다. 그러고 나서 6일 후 리먼 브라더스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수년간 떵떵거리며 잘 나가던 금융기관이 파산을 하고, 금융시스템이 붕괴하고 경제가 무너졌다.
리먼의 파산은 올퀴스트에게 직접적 충격파를 몰고 왔다. 직장을 잃은 데 이어, 모아둔 돈을 잃었고, 조기은퇴해서 고등학교 배구 코치가 되려던 꿈도 잃었다. 그는 월스트릿의 수준으로 보면 별게 아니어도 뉴욕, 헴스테드에서 그 구역의 제일 좋은 집을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벌었다. 좋은 일자리였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과거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리먼에서 트레이더로 일했던 켄 린튼 같은 사람은 가장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 주식 시장 활황기에 충분히 돈을 모은 덕분에 지금 그는 먹고 살 걱정 없이 제트기 비행 같은 호화로운 취미생활을 하며 살고 있다.
반면 제프 셰이퍼 같은 사람은 주유소와 세차장 주인으로 변신했고, 레슬리 젤버 같이 일자리를 찾아 표류 중인 사람들도 있다.
리먼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 남성, 대학 졸업자, 30대와 40대였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경력의 전체를 리먼에서 보냈던, 10여년 이상씩 근무했던 사람들이다.
리먼의 직원들은 같이 살았다. 같이 술을 마시고, 같이 운동을 하고, 같이 휴가를 가고, 서로 데이트도 하고, 시장 정보와 가십, 사생활 이야기를 주고받느라 밤낮으로 연락을 하며 살았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뿔뿔이 흩어져서 제 각각 살고 있다.
리먼의 중역에서 주유소 주인 된 셰이퍼는 “오래도록 분노에 차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던 것, 그렇게 많은 일을 했던 것에 화가 납니다. 무엇보다도 내 가족 때문에, 출장 다니느라 가족들로부터 떨어져 있어야 했던 시간들 때문에 화가 납니다. 이제 내가 벌었던 돈, 돈으로 사들였던 주식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되돌아가서 다시 만들 수가 없습니다”
뉴멕시코 상공을 높이높이 날고 있는 켄 린튼(43)은 리만 붕괴 1주년에 대해서도, 거기서 그가 했던 역할에 대해서도 별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리먼에서 13년간 일한 그는 대단히 똑똑한 인물로 유명했다.
리먼이 그를 감원한 것은 2008년 초였는 데 그게 그에게는 전화위복이었다. 보유 주식도 제값에 건질 수 있었고 맨해턴 아파트도 좋은 때에 잘 팔았으며 부동산 투자를 통한 소득이 쏠쏠해서 그는 일자리 걱정 같은 것은 할 필요가 없다. 돈 많은 독신으로서 그는 여가 생활로 나날을 보내고 있다. 37 피트 보트로 항해를 하고, 재즈 트롬본을 연주하며, 러시안 전투기와 글라이더 비행도 배웠다. 잠깐은 요리학교에 가는 것도 생각해보았다.
“운 좋게도 아주 멋진 장난감들을 가지고 있어요. 페이먼트가 다 끝났지요. 상황이 상당히 괜찮아요”
그는 2007년 초 그의 재정 모델들이 위험 신호를 보이기 시작하던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하지만 성장 일변도였던 당시 분위기로는 누구도 의문을 제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리먼에서 자신이 했던 일 혹은 그 후 닥친 경제적 파장과 관련해 아무런 가책도 없다고 말한다.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고 회사 방침에 따라 일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리먼에서 모기지 담당 매니징 디렉터였던 제프 셰이퍼는 플로리다, 리티아에서 모빌 주유소와 세차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 그가 쓰는 사무실은 리먼의 빗자루 창고만하다. 한창 경기가 좋을 때 그는 리먼에서 400명의 팀을 지휘했었다.
리먼에서 밀려난 지 1년 반이 되었지만 두 아이의 아버지인 51세의 그는 아직도 리먼 주식으로 잃어버린 돈을 잊지 못한다. “그럴 때면 분노가 치솟는다”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형편이 나쁜 이전의 직장동료들과의 대화를 나누다 보면 분노가 가라앉는다.
그의 직장을 따라 텍사스에서 플로리다로, 다시 콜로라도로 전국을 떠돌며 산 가족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그래서 그가 세차장을 매입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는 아내가 장소를 선택하게 했다. 그것이 플로리다였다.
올퀴스트의 경우는 어떤 면에서 일과가 별로 바뀐 게 없다. 지난 25년 동안 해온 주식 파는 일을 그대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리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이름 없는 작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45세인 그는 50세에 은퇴해서 코치가 되고 싶었는데, 지금으로 봐서는 은퇴를 늦춰야 할 것 같다. 그의 아내는 가계 소득을 보태기 위해 최근 비서 양성 과정을 마쳤다. 지난 2008년 초 그가 소유했던 리먼 주식은 650만 달러에 상당했는 데 리먼이 파산하면서 휴지조각이 되었다.
레슬리 젤버의 경우는 날이 갈수록 사는 게 힘들어지고 있다. 리먼이 붕괴하기 전 그가 소속되어있던 부서에서는 10개월동안 22명이 감원되고 3명이 남았는 데 그도 그중 한명이었다. 지난해 이맘때까지만 해도 그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43세의 독신인 그는 동료들보다 훨씬 많은 일을 도맡아 하면서 남성천하의 그 세계에서 살아남았다. 리먼이 무너질 리 없고, 그렇다면 자신의 일자리도 안전할 것으로 그는 믿었었다.
하지만 일 년 전 아침 리먼은 파산신청을 하고 그의 인생도 무너졌다. 이후 그는 일자리를 찾아 기업이며 정부기관이며 가리지 않고 수없이 보냈다. 취업에 도움이 될까 해서 비즈니스 과목들도 듣고 세미나에도 참가하고, 모기지 컴퓨터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개인교습까지 받았다.
하지만 한군데서도 연락이 없다. 현재 그의 피난처는 운동이다. 운동에 매달려 살고 있다. 자원봉사에 더 시간을 쏟으려 해보았지만 몇몇 병원들로부터 자원봉사 자리가 다 찼다는 연락만 받았다. 네트웍을 만들어 보려 컨퍼런스에도 가보지만, 비싼 등록비 때문에 절반은 빈자리다.
지난 한해는 그에게 평생 가장 힘든 해였다. 외로운 투쟁을 하느라 정신적 어려움이 가장 크다고 그는 말한다.
“이렇게 집에만 앉아 있을 수는 없어요. 일을 하고 싶어요. 리먼이 나 자신이었어요. 정말 거기서 일하는 게 좋았어요”
<뉴욕타임스 - 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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