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로라’라는 라디오 쇼를 가끔 듣는다. 사람들의 고민거리를 듣자마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빠르게 간결하게 조언을 해주는 유명한 그녀의 프로그램을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게 된다.
얼마 전 한 10대 남자아이가 전화를 걸었다. “나는 내 방을 마음대로 해놓고 싶은데 엄마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해서 죽겠어요. 어쩌면 좋은가요.”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네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네 것이 아니라 부모 것이다. 빌려 쓰고 있는 입장이니 주인의 말을 들어라. 친구 집에 가서 그 집 카펫에다 코딱지를 묻히겠냐? 네 것이 아니니까 그 집의 룰을 따르고 존중하지 않니? 나중에 네 소유의 장소가 생기면 거기서는 네가 무슨 짓을 하던 아무도 상관 안 한다. 지금은 빌려 쓰고 있으니 하라는 대로 해라. 오케이?”
전화 건 남자아이는 변명 한 마디 못하고 오케이하고 끊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대로 하고 살 자유를 갖기 위해서는 그 전에 거쳐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진리를 그 아이는 똑똑히 듣게 되었다.
그 방송을 듣고 나도 아이에게 똑같이 적용했다. 그랬더니 효과가 만점이 아닌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아이의 요구와 주장을 물리치기에 이보다 논리적이고 적절한 반박은 없었다.
공지영은 소설 ‘즐거운 우리 집’에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은 있는데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은 그것과 다르고, 그러니 답답하고 머리가 아픈 주인공 여고생에게 하는 말이다. 지금 눈앞에 놓인 일은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터널이며 이걸 지나면 끝에 하고 싶었던 것을 할 수 있는, 달콤한 자유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그림이 그려지는 말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아메리칸 아이돌’ TV 프로그램을 보면 달콤한 자유에 대한 환상이 더 커진다. 오디션만 통과하면 화려한 연예인의 생활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청소년들은 부푼 꿈을 안고 나온다. 가끔 놀라운 인재를 찾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꿈만 있고 아무 노력이나 재능이 없어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단번에 꿈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아이들이 많아서일까, 정부에서 발표한 캘리포니아 고등학교 졸업률은 2007~2008학년도에 겨우 67.7%였다. 몬스터 같은 구직 사이트를 한 번만 들여다보면 최소한 고등학교는 나와야 일을 하고, 마음대로 어지를 수 있는 아파트라도 얻을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지금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접고 달콤한 자유를 한 걸음에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김연아가 세계적인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된 것은 하루아침의 기적이 아니었다.
남들이 놀고 TV 볼 때 연습으로 흘린 인내의 시간이 그녀가 마음껏 피겨스케이팅을 즐길 수 있는 자유를 만들었다. 최근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존경을 받는 것은 그가 일생을 통해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도 끈기 있게 민주주의를 위해 힘써온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 값지게 생각하는 것을 위해 인내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만 자유라는 선물이 따라온다.
마음대로 어지를 자유, 친구와 수다 떨 자유, 하루 종일 TV 볼 자유, 다시 공부할 자유… 지금 내가 원하는 자유가 없어 불만이라면 나를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자유란 그 누가 그 누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한 톨스토이의 말을 한번 쯤 되새겨볼 일이다.
유정민 /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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