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8년차. 이제 어느 정도 능구렁이가 되어 웬만한 일에는 그리 당황하지 않고 윗사람의 말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때다. 쌓아온 경험으로 자신감도 생겨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해 나감으로써 만족감을 느끼기도 할 즈음이다.
그런데 나는 요즘 들어 직장생활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단순히 지겹다거나 도저히 못해 먹겠다거나 해서가 아니다. 직장생활에 대해 내가 가졌던 기대에 근접하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지 않은 현실과의 괴리 때문이다.
이쯤 되면 왜 직장을 다니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 월급을 받아 생활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실질적 유익을 제외하고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추릴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로 직업은 그 사람에게 사회적 지위를 부여한다. ‘소명’이라는 뜻을 지닌 ‘vocation’이 직업을 뜻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직업은 개인이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수단이 되며 그로 인해 개인은 사회적 정체성을 획득한다.
그러나 복잡한 현실사회에 비춰보면 이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생각이다. 거대한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대기업의 한 개인이 자신의 업무를 통해 사회적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코끼리 발등에 올라탄 개미 한마리가 코끼리 보고 자신을 알아봐 달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수백 명이 한 광고주를 위해서 일하는 회사 안에서 내가 하는 기획과 분석이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신이 가지 않는 판에 내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가늠하기란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한편 우리는 직장생활을 통해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는다. 이는 선택적인 관계가 아니므로 맘이 맞아 좀 더 인간적인 관계로 발전하기도 하고 때론 절대 상종 못할 인간들과도 관계를 현명하게 지켜감으로써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을 키워나갈 수도 있다.
그런데 갈수록 직장 안에서 마음을 열기가 어렵다. 노동의 유연성을 위해 우리는 이미 부속품처럼 취급되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인간적인 관계를 외치는 것은 허황된 생각일 뿐이다.
위의 두 가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아실현일 것이다. 자신의 타고나 재능을 발휘하며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하고 만족을 느끼며 조직과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것.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이것일 것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부정적이 되어가는 것 같다. 릴케가 말했듯 ‘직장 그 자체로 속이 드넓고 확 트여서 진정한 삶을 가능케 해주는 위대한 것들과 교류할 수 있는 직업이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서 멈출 수는 없다. 아직도 난 열정을 가지고 성실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자신의 소명을 펼치며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이들로부터 받은 영향은 때때로 사회의 어떤 강력한 메시지나 프로파간다보다 강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게 되기도 한다. 지나친 야근과 그로 인한 피로로 무엇을 원했는지조차 가물가물해지기도 하고, 무언가를 더 찾고 공부하는 일에 게을러지기도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진정 필요한 것은 도피가 아니라 잠시 한 발짝 물러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새겨 보는 일일 것이다.
김진아 / 캠벨 이웰드 시장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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