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이 무너지면서 높은 실업률과 적자재정으로 삭막해진 미시간이 영화 로케이션 장소로 주목을 받고 있다. 주민들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텅 빈 시내 거리들, 문 닫은 고등학교 건물 등이 영화 촬영에는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시내 여러 블록을 통째로 막아놓고 몇주씩 촬영을 해도 아무 불평이 없으니 세트장이 따로 없다. 미시간주는 대대적 세제혜택을 제공하며 영화제작사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주민들 떠나 텅빈 도시들 영화 촬영에 안성맞춤
미시간 주정부 적극적 세제 혜택으로 영화사 유치
뚜렷한 4계절, 광활한 오대호도 로케이션지로 인기
미시간에서 지난 반년 간 사람들이 모여 하는 대화의 주제는 구제 금융이나 파산, 감원 아니면 공장 폐쇄 같은 우울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최근 다른 화제 거리가 생겼다. 바로 유명 연예인들을 직접 보았다는 이야기들이다.
조지 클루니, 드루 매리모어, 알 파치노, 클린트 이스트우드, 에드워드 노튼, 힐러리 스웡크 같은 유명인들을 길에서 마주 치니 우울하던 일상에 생기가 도는 것이다.
로케이션 지역을 찾아 집시처럼 이곳저곳을 떠도는 영화업계가 2년 전부터 미시간을 좋아하고 있다. 주정부가 제공하는 넉넉한 세제혜택이 부분적으로 그 이유가 된다. 미시간은 영화를 찍느라 주에서 지출한 제작 경비의 최고 42%까지를 환불받을 수 있는 텍스 크레딧을 제공하고 있다.
주 의회 의원들 중에는 예산 적자가 심각하고 실업률이 지난 6월 15%를 넘어 전국 최고치에 달한 주에서 지나치게 관대한 세제 혜택을 제공하다며 반대론을 펴고 있다. 하지만 그런 세제 혜택 덕분에 영화산업이 몰려오고 있다는 데 대해서만은 아무도 이견이 없다.
미시간이 텍스 크레딧을 제공하기 전인 지난 2007년 미시간에서 찍은 영화는 두편에 불과했다. 텍스 크레딧이 시작된 2008년에는 35개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2009년 들어서는 이미 85개 영화가 제작을 끝냈거나 주정부에 제작 신청을 해놓은 상태이다.
2007년 미시간에서 영화사들이 제작에 쓴 돈은 200만 달러. 2008년에는 1억2,500만달러로 치솟았고 올해는 아직 계산이 나오지 않았다.
미시간 대학 교수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짐 번스타인은 영화제작에 대한 주정부 텍스 크레딧 프로그램 개발을 도왔던 인물. 그는 주의원들이 단기간의 이익을 노리고 세제 혜택을 정치적 타깃으로 삼을까봐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세제 혜택 외에도 미시간은 영화업계가 좋아할 만한 매력들을 가지고 있다. 인기 로케이션 지역인 루이지애너나 뉴멕시코와 달리 미시간은 4계절이 뚜렷하다. 4대호를 따라 3,000마일이 넘는 해안선이 펼쳐지는 데 수량이 엄청나서 수평선을 보면 대양처럼 광활하다.
그리고 오래된 예쁜 건물들이 들어찬 오래된 예쁜 마을들이 많이 있고 대학이 서너개 있는 것도 좋은 점이다. 자동차업계에서 일하다 실직한 근로자들이 많으니 세트장을 짓거나 조명 시스템을 작동하는 등 일손을 구하는 데도 전혀 문제가 없다.
미시간이 경제적으로 피폐한 것도 할리웃으로 보면 매력적이다. 디트로이트의 텅 빈 인적 없는 거리들은 영화제작자들에게는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다. 도시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여러 블록을 통째로 몇주씩 막고 영화를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발 킬머와 크리스토퍼 월큰이 출연해 내년에 개봉될 영화 ‘아이리시 맨’은 디트로이트의 여러 동네에서 찍었는데 하다못해 폭발장면들을 찍을 때도 시민들의 삶에 거의 방해가 되지 않았다.
아발로 영화사의 공동 대표이자 감독인 래리 어거스트의 설명에 의하면 인구 180만이나 200만을 위한 도시에 지금 사람들이 확 줄어들었으니(인구조사국 추정에 의하면 91만2,000명) 영화 찍기에는 정말로 편하다.
디트로이트 서쪽 하웰에는 버려진 고등학교도 있다. 그 마을에서 고등학교를 두 개나 운영할 여력이 없어서 2003년부터 비어있는 것이다. 이 장소는 최소한 한 영화의 배경이 되었고 지금 한 시트콤에서 조종사가 피격 당하는 장소로 쓰이고 있다.
미시간이 할 일은 영화제작시 무대 뒤에서 필요한 수많은 일자리들을 담당할 인력 개발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어거스트는 말한다. 그렇게 되면 지역주민들은 일자리를 얻고 영화 제작사들은 필요한 인력을 직접 끌고 들어가느라 드는 비용을 절약할 수가 있다.
영화를 만들려면 노련한 전기기술자, 카메라 작동전문가, 미술담당 직원들, 실내장식가, 회계사 등 많은 인력이 필요한데, 그 모두를 영화사들이 타주에서 데려가기보다 지역 인력을 쓰면 훨씬 편리하다.
과거 크라이슬러에서 14년간 일했던 대니얼 필립스는 지금 영화업계에서 새로운 경력을 쌓고 있다. 2007년 일자리를 잃은 그는 화장 전문가로 생계를 유지할 생각이었다.
수년전 LA에서 신부 화장을 배운 경험이 있던 그는 결혼식 날 신부들 화장을 맡거나 화보 촬영 모델들의 화장, 때로 특수 효과 가면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집 지하실을 사무실로 쓰면 충분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업 시작 2년이 된 지금 필립스는 세인트 클레어 쇼어스에 스튜디오를 마련할 정도로 사업이 번창했다. 오는 10월에 개봉될 스릴러 영화 ‘인텐트’의 특수 효과를 담당했고, 그랜드 래피즈에서 찍은 어린이 쇼의 분장도 맡았다.
하지만 그는 지금의 영화 붐이 사라질 수도 있어 걱정이다. 영화업계가 미시간에 온 것은 순전히 세금 혜택 때문인데 그 혜택이 중단되면 다른 곳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고 그는 말한다.
영화 제작사들을 미시간에 보다 적극적으로 유치하려면 인프라가 필요하다. 그래서 미시간은 내년 중 두 개의 스튜디오를 개장한다.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에 860만달러를 들여 세우는 디트로이트 센터 스튜디오는 7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편집실, 음향실, 시사회관 등을 갖추게 될 예정이다.
폰티악의 제너럴 모터스 공장을 개조해 만든 700만달러의 모타운 모션픽쳐 스튜디오는 영화 제작의 다양한 분야를 담당할 일자리 5,130개를 만들어 낼 것으로 전망된다.
건축물 인프라 외에도 주정부가 준비해야 할 것은 인력이다. 대규모 영화 프로젝트 7개 정도를 동시에 감당할 만한 인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영화업계에 증명해보일 수 있어야 한다.
반면 근로자들이 영화사 일을 지속 가능한 일자리로 여기게 하려면 주정부는 한번 와서 몇 달 찍고 떠나는 영화 몇 개 이상을 끌어들여야 한다. 예를 들면 TV 시리즈물이다. TV 시리즈는 거의 일년 내내 하는 것이어서 한번 들어오면 다른 데로 옮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시간 주정부가 세제 혜택을 주는 연예산업 중에는 비디오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도 포함된다. 비디오 게임 개발 사업은 고도의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고용, 연중 계속되는 사업이기 때문에 대단히 매력적이라고 번스타인은 말한다. 생활비 비싼 캘리포니아 보다 미시간이 더 낫다는 점을 비디어 게임업계가 보기 시작했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다하더라도 연예업계가 자동차업계를 대신 할만큼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는 없다. 이제 미시간이 살 길은 어느 특정 업종에만 매달리지 말고 다양성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영화업은 그 하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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