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한국에서 대 히트였던 ‘쇼’라는 광고가 있었다. ‘우물쭈물 살다가 내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라고 새겨진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보여주며 “세상에 없던, 세상이 기다리는 쇼가 시작된다”는 카피로 끝나는 내용이다. 우물쭈물 하다가 제대로 하는 것도 없는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이 메시지는 모든 공중파를 제압하며 엄청난 바람을 일으켰다.
불경기에 감원 바람이 일고 나서부터 여기저기 학교에 사람들이 몰린다고 한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공부를 하기도 하고, 지금은 어둡지만 언젠가 나아질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물쭈물 이도 저도 아닌 현실에 끌려 다니는 것 보다야 훨씬 의미 있는 일이다. 공부가 끝나면 적어도 한가지는 확실히 한 후일 터이니.
한 친구는 5년 전 아이를 낳고 MBA에 도전하여 한 학기에 한 과목씩 저녁에만 듣곤 하더니, 어느새 곧 졸업이란다.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을 때 “와, 아이 기르면서 그 공부를 언제 다 하나” 했었는데 졸업이라니, 그야말로 어영부영하면서 내가 보낸 시간과 확실하게 대비된다.
뿐만 아니다. 오지여행가, 국제구호기구 활동가, 작가인 한비야 씨는 50이 넘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다고 유학길에 올랐다. 훨씬 나이가 적은 사람들도 “이 나이에 시작해서 언제…” 하는 마당에, 그녀의 움직임은 많은 사람들을 깨어나게 만든다.
지난해 근처 대학교에서 그림 과목 하나를 들을 때에도 이미 은퇴하고도 남은 백발의 할아버지 학생이 있어서 큰 위안을 받았던 적이 있다. 둘러보면 너무 늦어서, 너무 멀어서, 너무 나이가 많아서, 너무 준비가 안 되어서…라는 말들은 그저 핑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언제나 하지 못할 이유를 찾는 것은 쉽지만 해야 할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시간이 지나면 그때 해야 할 이유를 찾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그 일을 하지 않은 것을 또 후회한다.
계속 후회의 연속, 그야말로 우물쭈물 어영부영하다가 후회로 끝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갖은 이유를 대가며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주변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나이 40에 새로운 공부를 한다는 것, 벌써 한 자리 했어야 하는 나이에 아랫사람이 된다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광고 분야에 있던 한 친구는 “태평양을 건너면서 한국에서의 일, 경력 그런 건 다 바닷물에 버려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전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서 남들보다 몇배로 열심히 일하며 자리를 잡았다. 그녀도 분명 후회스러운 일들이 있겠지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시간을 보낸 사람의 후회와는 다르지 않을까.
얼마 전 읽은 책에서 만난 구절이다. “모든 행동은 그것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늦지 않습니다. 언제나 후회만이 늦을 뿐, 행동은 결코 늦지 않습니다”<고병권, ‘추방과 탈주’>
우리가 후회하는 이유는 지금 있는 이 자리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과거에 한 행동이 아쉽기 때문에, 바로 지금보다 더 나은 현실을 꿈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후회하기 전에 이제 행동으로 옮기면 되는 일이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일을 하지 않았을 때 찾아오는 후회보다는 결코 늦지 않다.
유정민 /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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