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두돌 반을 넘긴 아들과의 대화가 요즘 이런 식이다.
“엄마, 구름은 왜 움직여?” “바람이 부니까 움직이지..” “바람이 부니까 구름이 왜 움직여?” “…”
혹은 등대는 밤에 배가 부딪칠 까봐 불을 켜주는 거라고 했더니 그럼 등대랑 별이랑 똑같은 거냐고 해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한참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런 질문들이 좀 귀찮기도 하지만, 아이에게 언제나 미안한 ‘일하는 엄마’이므로 되도록 열심히 대답해 주려 애를 쓴다. 하지만 쉽게는 국어, 산수부터 지구과학, 생물까지 모든 분야를 총망라하는 아이와의 대화가 반복되다 보면 순간순간 답이 마땅치 않을 때가 온다. 그래서 이때만 모면하자는 생각과 잔머리가 결합되어 “밤에 왜 밖에 나가면 안 되느냐”는 질문에 “깜깜한데 나가면 호랑이가 나올지도 모른다”라는 60년대 할머니 식의 대답을 해버리고 만 경우도 몇번 된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의응답식 대화를 하다보면 궁색해 지는 것은 내 쪽이다. 아이들의 질문은 절대 막히는 법이 없다. 주어 목적어를 대충 생략해도 대화가 되는 어른들과의 생활에 익숙하다 보니 아이의 아주 간단한 질문에 오히려 대답이 잘 안 된다.
그러다 한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아이의 질문에 대충 대답을 하면 그 다음 질문에도 또 이것저것 갖다 붙여야 하지만, 아이가 못 알아들을망정 사실에 근거해서 대답을 하면 다음 질문에 나도 준비가 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기본에 충실하게, 사실에 근거해서 대답을 하니 쉴 새 없는 아이의 질문에도 나름대로의 기준이 세워지는 것이다. 그런 대답을 하려면 놀고 있던 머리를 써야하고, 아이의 수준으로 이야기를 바꾸는 번거로움도 있지만, 그렇게 하니 아이의 반응도 제법 진지해서 별자리 이야기를 듣는 표정만큼은 스티븐 호킹이 따로 없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이라는 책을 쓴 여성학자 박혜란 씨는 책에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적었다. 중학생 아들이 어느 날 수학 문제가 안 풀린다며 엄마한테 도움을 청했다. 당시 전업 주부 10년 차였던 엄마는 “그 문제를 어디까지 풀다가 엉켰는지 설명해 봐. 엄마는 전혀 모르니까 처음부터 차근차근 잘 설명해 줘야해” 하고 말했고, 아들은 이제까지 저보다 훨씬 유식한 줄 알았던 엄마가 자기보다 모른다 싶으니까 신이 나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교육적인 의도에서가 아니라 정말 이해를 못했기 때문에 한 말인데, 아들은 이렇게 쉬운 것도 이해를 못하냐며 원리부터 다시 짚어 설명을 하더니 갑자기 “아, 그렇구나, 엄마, 알았어” 하며 신나했다. 그 이후로도 아들은 문제가 안 풀린다 싶으면 엄마한테 와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어보세요. 어디서 엉켰는지 찾아내야 해요” 하면서 말로 풀어나가기 시작했고 그러면 대부분 저절로 문제가 풀리곤 했단다.
비단 아이 키우는 일 뿐이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문제에 부딪히면 우선 편하게 해결하는 길을 선택한다. 빨리, 그리고 책임을 가장 적게 질 수 있도록 편법을 동원한다. 직장에서는 일반적으로 빨리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능력으로 본다. 물론 신속성이 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원인을 찾아 기본부터 해결하는 것이 오래 걸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빠른 길임을 우리는 가끔, 혹은 자주 잊고 산다.
‘마지막 강의’로 유명한 랜디 포시 교수도 생전 인터뷰에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어떻게 합니까?”라는 질문에 “솔직하게 이야기 한다”고 했다. 진심어린 솔직함은 번뜩이는 머리보다 더 오래가기 마련이다.
지니 조 / 버진모바일 힐리오 마케팅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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