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제(Korean Festival)
지난 7월 11일에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한인 축제는 8번째 계속되면서 다문화 축제로 자리 잡았다. 2003년 이민 100주년 기념을 준비하면서 예행으로 2002년에 시작한 축제였다.
그런데, 최초의 한인 축제는 2002년이 아니라 95년전인 1914년 2월에 있었다.
1914년 2월 1일에 국민회 창립 5주년과 새 회장 취임을 기념하기 위하여 행해진 축제는 월요일인 2월 2일에 있었다. 기념식 날 아침에 각 지역에서 기차로 온 한인 군인들이 호놀룰루 철도역에서부터 약 1.5 마일 릴리하 스트리트까지 행진 하였다.
이 군인들은 1909년 말부터 국민회에서 실시한 무예 훈련에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는 조선말 광무군인 출신들이 많았다. 군인들은 군복을 착용하였고, 호놀룰루 광무군대와 구세군군대, 에바, 와히아와, 카할루 지방의 군대, 그리고 중앙학원 학생들의 학도대 등 총 200여 명으로, 그중 나팔수와 기수가 10여 명이었다.
행진에는 중앙학원 학생들이 연꽃으로 장식한 꽃차에 사모옥대와 쌍학흉배를 붙인 문관 한 사람과 녹의홍상에 칠보화관을 단장한 소년부인 세 사람도 서 있었다. 자동차 앞에는 전립전복을 한 무관 두 사람이 말을 탔다. 행진을 마친 후 1시부터는 빈야드에 있는 청소년운동장 (현 릴리하 도서관 옆)에서 관병식을 하고, 각 군대가 차례로 재능을 보였다. 저녁 7시 30분부터 오페라하우스(현 카메하메하 동상 옆)에서 예술행사를 가져 1,500명의 관객이 모였다. 중앙학원 여학생들의 십자(十字) 형태를 이룬 무용은 보는 이로 하여금 “우리 국민의 국시가 예수교임을 주장하는 뜻”으로 생각하게 하였다. 또한 조선 13도를 상징한 13명 부인들이 흰 양복을 입고, 손에 태극기를 들고 나와 “조선아, 조선아, 우리 조선 주인을 찾아 돌아오라”고 노래 불렀다.
이 축제는 한인의 당당한 모습을 호놀룰루 사회에 보이면서 “부모국의 광채를 들어내었다.” 조석간 영자 신문은 여러 날 이 행사에 관한 기사와 사진 등을 실었다. 이 행사로 국민회는 호놀룰루 사회에서 명실공히 한인을 대표하는 단체로서 인정받았고, 워싱턴 대통령 탄신기념 축제 준비위원회에서 2월 14일 워싱턴 대통령 탄신기념 축제에 참여하여 달라는 초청을 받아 다시 한번 ‘한국인의 광채’를 들어내는 기회를 가졌다.
다문화 사회에서 한국문화를 앞세우는 ‘한인축제’가 100년, 200년 계속되도록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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