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에는 은행들이 구제 금융을 받았고 지난 겨울에는 자동차 회사들이 구제받았다. 시카고에 사는 작가인 에드 맥클리랜드는 며칠 전 구제됐다. 그의 카드 회사가 밀린 카드빚을 언제 갚을 것이냐고 전화했다. 그는 5,486달러에 달하는 밸런스의 절반을 갚을 테니 나머지를 탕감해 달라고 제의했다. 담당자는 자기 수퍼바이저와 상의하지도 않고 즉석에서 그렇게 해주겠다고 답했다.
밸런스 다 안 갚고도 좋은 크레딧 유지
채무 대폭 줄여주는 대행업체들 성업 중
빚을 갚지 못하는 고객이 급증하면서 크레딧 카드 회사들은 과거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하고 있다. 총 채무보다 훨씬 적은 돈을 받고 나머지를 탕감해주는 것이다. 이는 작년 가을 경기가 나빠지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실업률이 9%를 넘어서면서 돈을 제때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자 이같은 관행은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많은 크레딧 카드 회사들은 담당 직원에게 고객들과 딜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쪽으로 내부 방침을 바꿨다. 그들을 고객이 전화를 해 깎아달라고 요청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크레딧 카드업계 전문 저널인 닐슨 리포트의 발행인인 데이빗 로벗슨은 “이제는 카드 회사 쪽에서 먼저 전화를 해 딜을 하자고 한다”고 말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카드 회사는 많지 않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와 아메리컨 익스프레스는 케이스에 따라 일부를 탕감해줄지 여부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다른 회사들은 이 문제를 논의조차 하지 않으려 하지만 카드 회사들 그룹인 미 은행협회는 이런 일들이 자주 벌어지고 있음을 시인했다.
이런 현상은 금융업계가 과거 막강했던 파워를 잃으면서 발생하고 있다. 기존 밸런스에 대한 이자를 올리거나 자동적으로 각종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은 연방 의회를 손쉽게 통과, 지난 5월말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을 했다.
그러나 아직도 소비자들은 과다한 부채를 진 채 남아 있다. 지난 3월 현재 크레딧 카드 빚 총액은 9,396억달러에 달한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1분기 30일 이상 연체된 카드 빚이 총액의 6.5%에 달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1991년 이래 최대 규모다. 손실로 처리된 부채 총액 역시 사상 최고 수준이었다.
6개월 이상 연체된 밸런스는 규정상 무가치한 것으로 처리된다. 그 때까지 갚지 않은 돈은 평생 갚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소비자 교육 웹사이트인 크레딧 닷 컴을 창립한 애덤 레빈은 “크레딧 카드 회사들은 나중에 한 푼도 건지지 못하느니 지금 한 푼이라도 건지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크레딧 상담 센터를 위해 일하는 변호사인 제프리 테넨바움은 은행과 카드 회사들이 처음으로 원금을 깎아주는 조건으로 부채를 해결하는 새 프로그램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크레딧 카운슬러들은 카드 회사로 하여금 이자를 낮추거나 연체 수수료를 면제해 주는 것까지는 협상할 수 있었지만 밸런스만은 건드릴 수 없었다.
카드 회사들 태도가 얼마나 갑자기 바뀌었나를 보여주는 예가 HSBC와 맥클리랜드 케이스다. 그가 페이먼트를 했다 말았다 하자 카드 회사는 카드를 취소해 버렸다. 지난 4월 카드 회사는 원금 20%를 깎아주겠다고 제의해 왔다. 그가 이를 거절하자 수주 후 50%를 탕감해 주겠다고 나왔다.
전통적으로 카드 회사들은 고객이 재산이 있기 때문에 강하게 나올 수 있었다. 채권자들은 소송을 하거나 소유 주택을 가압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황이 깊어지면서 카드 사용자들은 잃을 게 없어졌다.
맥클리랜드(42)는 아파트를 렌트하고 있고 자영업자라 월급에서 뗄 수도 없다. 그러나 그는 신용 불량자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 문제를 마무리 짓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약속한대로 2,743달러를 마련해 지난 주 모두 갚았다. 이렇게 해 수 년 동안 컬렉션 에이전시로부터 전화가 걸려 오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HSBC는 개인 카드 사용자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고 협상 방침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대변인인 신디 사비오는 “모든 케이스가 사정이 다르다”고 말했다. 카드 회사들은 원금을 깎아주는 것이 말만 잘 하면 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을 또 카드 체납은 파산과 같이 크레딧 기록을 망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또 하나의 문제는 재산이 없는 사람일수록 원금을 깎아주겠다는 제의를 받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들이야말로 깎인 돈도 낼 형편이 못 된다는 것이다. 일부 회사들은 이들이 수개월에 걸쳐 분납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드 회사들은 넘을 수 없는 선을 넘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시티뱅크와 뱅크 오브 아메리카, 워싱턴 뮤추얼에서 컬렉션을 담당해 온 카민 도리오는 “체납 초기 단계에서도 파격적인 제의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호황 때는 페이먼트 미납자는 가혹하게 다뤄진다. 그들의 채무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컬렉션 에이전시는 카드 회사로부터 미수금을 원금의 15%에 사들인다. 경제가 좋으면 빚을 많이 진 사람도 일부는 갚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불황처럼 실직자로부터 돈을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을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이제는 카드 미수금은 원금의 5%라도 받으면 다행이다. 카드 회사가 약해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채무 정리 회사들의 등장이다. 이들은 미리 돈을 받고 소비자를 위해 카드 회사와 협상하는 영리 기관이다.
이들 회사들은 많은 것을 받아낼 것처럼 선전하면서 실지로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협상을 해 원금을 깎는 것이 쉬울 뿐 아니라 그동안 카드 사용자들을 착취해 온 카드 회사에 대한 보복이라는 이들의 선전은 협상 관행을 널리 퍼뜨리는 역할을 했다.
이들 업체에 대한 통계는 없지만 일부는 빚을 깎는데 큰 성과를 내기도 한다. 가주 뉴포트 비치에서 개스 스테이션을 운영하고 있는 베드로스 알릭쇼글루(75)는 4개의 크레딧 카드에 11만2,000달러의 빚을 지고 매달 3,000달러를 이자와 연체료로 내고 있었다. 그는 “그 돈을 버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 내봐야 빚 갚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호프 파이낸셜이라는 협상 회사와 계약을 맺고 원금의 65%를 깎는데 성공했다. 이 회사는 그에게서 원금의 12%를 수수료로 가져갔다. 그는 “파산을 유산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며 “이제 나는 안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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