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을 방문 중이다. 하지만 지난해 4월에 이루어진 부시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와는 달리 이 대통령의 발걸음은 매우 무겁고 마음은 착잡할 것이다.
소위 ‘조문정국’의 후유증으로 국내 분위기가 어수선한데다 북한의 로켓발사와 2차 핵실험으로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한미동맹 강화라는 원론적인 선언에 그치지 말고 북핵 문제 등 향후 한미관계에 영향을 미칠 사안에 대해 심도 있고 실질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
아무래도 정상회담의 주 의제는 북핵문제가 될 것이다. 지난 수개월간 북핵문제는 북한의 로켓 발사, 유엔 안보리 제제, 6자회담 탈퇴와 2차 핵실험, 보다 강력한 대북 제제 등으로 숨 가쁘게 진행되어왔다. 급기야 북한은 지난 13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우라늄 농축작업 착수, 새로 추출한 플루토늄의 전량 무기화, 대북 봉쇄 시 군사대응 등 3개 조치를 선언했다.
마치 치킨게임이라도 하는 듯 진행되고 있는 북핵문제는 상당히 어려운 국면에 처해있고 한미 양국 모두 마땅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공조라는 원칙론만 반복하지 말고 현 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대책을 구체적이고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것 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서 남한의 역할 공간을 찾는데 주력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한미공조만 강조하면서 마땅한 대북정책을 내 놓지 못하고 있는데 현 상황은 북미관계보다 남북관계가 더욱 심각함을 인식해야 한다.
북미관계의 경우 긴장국면이 좀 더 지속되긴 하겠지만 가을에 접어들면서 양국 간 일정한 대화와 타협점을 찾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경색될 대로 경색된 남북관계는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만일 남북관계에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북미 간 대화가 열린다면 그 파장은 남한은 물론 한미관계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는 특수한 성격이 있는 만큼 이대통령은 미국 측의 이해를 구하고 북한과의 대화채널을 확보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해결책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현재의 한미 정부 간 관계는 매우 좋은 상황이지만 복병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진보진영은 효순 미선 양 추모대회를 여는가 하면 한나라당을 포함한 보수진영에서는 핵 주권론을 주장하고 있다. 추모대회가 반미로 흐르고 핵 주권론이 확산되는 날에는 한미관계 역시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미 정상은 이러한 상황을 다각도로 고려하여 한미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대비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4월 부시 대통령의 환대 속에 미국을 방문한 후 고무된 표정으로 귀국한 이대통령이 곧바로 소고기와 촛불정국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낸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어차피 시간이 좀 더 필요한 사안이므로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의제가 될 필요는 없다. 오바마 대통령의 의지를 다시한번 확인하면서 연말이나 내년 초에 본격적으로 논의될 때를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해 이대통령의 방미 직후 필자는 서울의 모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이대통령이 미국의 환대에 취하지 말고 냉정해질 것을 권고한 적이 있다. 그 후에 전개된 ‘촛불 정국’을 보면서 필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미국 방문 중 이대통령은 미국의 환대에 취할 여유가 없을 것이다. 양국정부간 공조가 잘 되고 있는 현 상황을 잘 활용하여 북핵 문제 등 난제들에 대해 정상 간의 허심탄회하고 실질적인 논의를 통해 성숙된 한미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귀국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신기욱/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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