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한 금융인 정원훈 남기고 싶은 이야기 <14> 아시아나은행
아시아나은행은 2003년 8월 나라은행에 인수됐다. 나라은행의 윌셔가 본점 건물.
1996년 은행일에서 완전히 손 떼려 결심
수차례 강하게 거절해도 막무가내
서니베일로 혼자 이사 점포예정지 물색
■삼고초려
1996년 3월께 나는 북가주로부터 두 손님의 내방을 받았다. 한 분은 나의 뉴욕 한국은행 사무소 소장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한국의 전자산업 발전에 공헌이 컸던 K박사, 또 한 분은 그 곳의 중년 CPA.
한 달 후면 내가 새한은행을 떠나는 것을 잘 알고 왔단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 때는 북가주에 와서 새 은행 설립 일을 맡아달라고 한다. 은행 일을 더 할 생각이 없던 나의 답은 NO이었다.
그 후에도 K박사께서는 편지를 보내 재고해 보라고 청해 왔지만 나의 반응은 여전했다. 결국 Asiana Bank of Silicon Valley(ABSV) 설립준비는 T씨에게 맡겨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미국인인 T씨는 LA 중앙은행의 초대행장을 지낸 이어서 나는 잘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해 8월께 L씨가 왔던 김에 들렀다고 나를 찾아와 암만해도 내가 와줘야겠다고 일방적인 청을 하고 갔다.
그해 연말 그는 발기 이사회 이사장인 K씨와 같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그들의 요청은 다급했다. ABSV의 이사 중 몇 사람이 이탈하여 North Pacific Bank란 이름으로 또 하나의 새 은행 설립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잔류파는 행장을 잃어버린 마당에 대신할 사람도 없어 막연한 상태란다.
비공식적인 이야기지만 FDIC 같은 데서는 우스갯소리로 LA의 한국계 은행의 대부가 있지 않느냐고 암시도 해주더라. 알고 보니 정 행장 당신이다. 벌써 6~7년 동안이나 이 은행을 준비해왔는데 이런 처지다. 잔류파는 당초부터 골수파여서 어떻게 해서라도 은행 설립을 성취할 결심이다. 이번에는 당신이 꼭 발 벗고 나서주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래도 생각이 없다고 거부에 힘썼다. 그랬더니 그들은 “정 행장, 당신은 LA에서 세 번이나 은행을 세우지 않았습니까. LA 교포사회에서는 그런 봉사를 하고 북가주 교포의 요청에 대해서는 본체만체 하겠다는 거요? 당국에서까지도 추천하는 분 아닙니까. 꼭 와줘야 되겠소”라며 간곡히 청한다.
성탄절 이브인 그 날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들의 간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두 분은 다음해 1997년 정초에 다시 내려와 나에게 초청각서 같은 것을 제기하며 나의 서명을 요구했다. 뛰어난 대우는 아니지만 처음 문을 여는 은행으로서는 제법 마음을 쓴 조건이었다.
그해 2월 나를 CEO로 하고 몇 이사를 보완한 은행 설립 신청서가 주은행국(DFI)에 제출되었다. 9월 하순에 승인이 났다. 그때부터 새 은행 설립준비가 본격화되었다. 10월에 나는 은행 소재지가 될 Sunnyvale에 혼자 옮겨갔다.
■Sunnyvale
서니베일은 외부에서는 샌호제와 동의어로 취급되거나 일부로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서니베일은 샌호제와 같이 Santa County 내의 12개 도시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중 샌호제가 가장 큰 도시여서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서니베일은 오히려 변두리 한 구석이었는데 최근에 와서는 실리콘밸리로 알려진 세계의 전자, IT 산업의 중심지로 급변신했다. 내가 그 곳으로 이사했을 때는 그 변신이 절정을 향하여 달음질치고 있을 때였다.
은행 설립사무소는 서니베일 남쪽 샌타클라라시 산업단지 내에 있었다. 이사를 하자마자 먼저부터 실무를 맡고 있었던 M군, L군과 더불어 은행 설립을 위한 일에 몰입했다.
그러면서 주말에는 일찍 집을 나서 거리 답사에 나갔다. 우선 집에서 가까운, 코리아타운이 형성 중이라는 엘카미노 리얼의 일부 몇 블럭을 돌아보았다. 엘카미노 리얼은 문자 그대로 왕로로 옛날엔 샌프란시스코부터 멕시코까지 연연히 뻗어 있던 주 도로였다.
코리아타운이 형성되고 있는 부분에는 빌딩이라 할 만한 건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을 앞에 두고 뒤쪽에 단층 연립 상가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몰(mall)이라고 불리는 이들 상가는 규모가 큰 것은 여남은 채, 작은 것은 대여섯 업소가 들어 있다.
7~8마일 정도 되어 보이는 이 지역은 거리 양쪽이 이런 몰로만 꽉 차 있는 것은 아니다. 한쪽이 몰이면 길 건너는 자동차 수리공장, 패스트푸드 등 식당 그리도 병원, 모텔, 또는 몰을 형성하지 않은 작은 상점들이 퍼져 있다. 교포상점은 대개 몰에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엘카미노 리얼 도시 속에서 한국 가게를 찾아본다. 중 규모 이상의 마켓이 두셋, 그 외에 식당, 한의원, 병원, 여행사, 보험, 부동산 중개업, 세탁소, 미용실, 사진관, 노래방, 교회 등 20여개가 간간히 끼어 있었다. LA의 올림픽 가는 말할 것도 없고 작금 한국인들이 모이기 시작한 웨스턴가보다도 한국인 상가 형성이 뒤떨어진 상태다. 그러나 여기가 북가주에서는 우리 동포의 상업 활동이 가장 많다고 하고 앞으로 더욱 많아질 곳이다.
1997년 말 당시 상업지역의 한국인 가게는 샌프란시스코 791개, 이스트베이 707개, 샌호제 977개 합계 2,855개였다. 새 은행이 점포를 이곳 샌호제에 두어야 한다는 결정이 확고해지는 느낌이었다.
■점포 예정지
다음날 내가 오기 전에 정해 두었다는 은행 점포 예정지를 찾아갔다. 서니베일 시청 등이 들어 있는 행정구역 옆에 위치한 금융기관 집결지였다. BOA, Wells Fargo, Great Western 등 큰 은행들이 들어 있다.
그 중 새 은행이 교섭중인 곳은 전 First Interstate Bank 건물로 객장은 탁 트인 높은 천장의 홀이 있고 그 일부는 2층으로 건평이 1만3,000스퀘어피트. 주차장도 넓고, 작은 은행의 본부로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옆에는 이곳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대규모의 샤핑몰도 있다. 내부를 한 바퀴 돌아봤다. 한국인 가게는 통 볼 수가 없었다. 손님들도 마찬가지다. 주위 아파트 등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새 은행 터로 교섭중이라는 건물은 은행의 위촉 변호사가 소개한 중개업자가 임대계약을 준비 중이라 했다. 그 다음 주에 엘카미노 리얼 코리아타운 형성 지역과 그 은행 점포 교섭 지역을 한 번 더 돌아보았다. 그러자 자연스레 결론이 내려졌다. ‘교섭중인 곳은 어떻게든 폐기할 것. 대신에 엘카미노 리얼에 점포를 얻는다’가 그것이었다. 새 점포는 그 곳의 몰 중에 한 군데여야 겠다는 직감까지 갖게 되었다.
나는 은행 간부들을 대동하고 희망지에 나가 주변 설명을 했다. 그 중 자동차 판매를 하고 있는 몰 중간에 있는 점포를 혹시나 하고 들여다보았는데 마음에 들었다. 한인 가게여서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후 은행의 L군이 교섭에 나서 그 가게를 은행에 양보하는 방향으로 유인했다. 샤핑몰은 자동차 판매에는 적당치 않고 더 넓은 곳으로 이전을 고려중이었던 것 같다. L군이 일본인 집 주인과 자동차 가계를 오가며 타협안을 보게 되었다.
시청 근처의 은행건물 임대 건은 원래 은행 고문 변호사가 소개했던 것이라고 한 바 있다. 그런 관계 때문인지 변호사로부터 독촉도 가끔 있었다. 나는 두세 차례 건물주 특히 브로커에 전화를 걸었다. 그 결과 건물주 측은 따로 새 은행이 입주할 만한 건물이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그들은 새 은행의 임대조건이 당연히 수락되리라 믿고 있었다.
나는 가급적 시일을 끌다가 건물주 측의 오퍼에 대해 당돌하다 할 정도로 낮은 카운터 오퍼를 냈다. 끝에 회신의 유효기간도 표시해 뒀다. 때마침 연말이어서 다들 쫓기고 있는 동안에 우리가 제시한 기한이 상당기간 경과되었다. 그간에 엘카미노 리얼의 자동차 가게 건도 대충 마무리단계에 이르렀다. 나는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 건물 임대 건은 먼저 보낸 우리 측 카운터 오퍼 조건이 수락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상담을 끝낸다는 내용의 간단한 서한을 보냈다. 이것이 내가 서니베일에 와서 한 첫 정리 사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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