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좀 혹사한 탓인지 얼마 전 갑자기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 주말에 친구들과 아웃렛에 가기로 했는데, 상태가 점점 더 심해져 결국은 앓아눕고 말았다.
가족한명 없이 혼자 이민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몸이 아플 때 얼마나 외롭고 서러운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배는 고픈데 집에는 먹을 것이 없고 사러나갈 힘도 없어 침대에 그대로 누워만 있어야 했다.
그때 내 상태가 좋지 않은 걸 아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저녁에 목사님 댁에 가서 함께 삼계탕을 먹자는 전화였다. 그날 저녁 우리는 정성껏 끓인 맛있는 삼계탕을 먹고, 편안하게 쉬다 돌아왔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친구는 저녁에 선약이 있었는데도 내가 아픈 걸 알고 혼자 있으면 더 아프고 서러울까봐 약속을 변경하고 목사님 댁에 부탁을 드렸던 것이다. 목사님 가정은 모처럼 맞은 휴일 저녁 귀한 시간을 아픈 나를 위해 내어주셨다. 떠나는 나에게 다음날 먹을 식사까지 챙겨주셔서 내 마음은 이미 다 나은 듯 가벼웠고, 실제로도 생각보다 훨씬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선행은 선행을 낳고 섬김은 섬김을 낳는다. 선행의 선순환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관심과 배려, 섬김을 통해 따뜻하고 깊은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을 나는 그날 저녁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 친구와 나는 교회에서 만나 우정을 쌓았고, 서로 기쁠 때 같이 기뻐해주고, 힘들 때 도움을 주는 관계로 오랫동안 지내오고 있었다. 또 목사님과도 같은 공동체 안에 있으면서 목사님의 사역을 돕고 존중하며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아플 때, 그들의 챙김을 받게 된 것이다.
수없이 많은 만남들 중에 얕은 관계는 많지만,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는 노력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사랑이란 서로의 착한 마음을 믿어주는 것이라고 했던가? 선약을 바꾸면서까지 나를 생각해준 친구의 따뜻한 배려, 모처럼 맞은 휴일을 나를 위한 섬김의 시간으로 사용한 목사님 가족의 사랑… 그 선한 마음들이 내 몸과 마음을 치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득 최근에 읽은 이외수 작가의 글이 생각이 났다.
“그대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망각의 늪 속으로 사라져버릴 사람이 있고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기억의 강기슭에 남아 있을 사람이 있다. 혹시 그대는 지금 망각의 늪 속으로 사라질 사람을 환대하고 기억의 강기슭에 남아 있을 사람을 천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때로는 하찮은 욕망이 그대를 눈멀게 하여 하찮은 사람과 소중한 사람을 제대로 구분치 못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나니, 훗날 깨달아 통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분별력과 지혜로 소중한 관계를 시작하고, 그 귀한 관계를 섬김과 존중을 통해 세월이 갈수록 더 굳건하게 만들어 가기를 소망한다.
권무성/ 애드크리아시안즈 광고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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