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쉬지도 않고 매일 먹고 마시는 음식의 분량은 대단하다. 그러므로 먹거리에 관계된 모든 사업이 결국에는 시장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 산과 바다 그리고 농토에서 나와 유통과정을 거쳐서 우리의 입으로 들어오게 되는 음식의 경로를 생각하면 그 방대함과 사람들의 수고에 새삼스럽게 고마움을 느끼게도 된다. 음식에 관련된 직업도 만만치가 않아서 우리는 결국 먹고 마시는 일을 해결하기 위하여 일생을 보낸다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니다.
먹는 일이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과이면서도, 우리가 매일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 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냥 중요한 삶의 한 부분일 따름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누구나 몇 가지의 음식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그 기억은 어린시절에 먹었던 어떤 음식에 대한 각별한 느낌인 것이다.
내가 기억을 하고있는 음식이란, 유치원시절에 방송국에서 어린이 시간의 생방송을 끝내고 집으로 오다가 우유와 함께 먹었던 한조각의 케익이었다. 맛도 맛이지만, 나의 눈에 띄인 것은 케익위에 크림으로 장식되어 있던 조그맣고 앙증맞은 한송이의 장미였다. 유치원 선생님이 “장미가 있는 요 케익은 문자꺼” 하면서 특별히 나의 몫으로 배당해 주신 그 케익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6.25 사변 전에 서울에 있었던 그 빵집은 요즈음 서울의 번화가에 있는 빵집들과 비교를 한다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그런 장소였다. 그 이후, 성장기에 내가 아프기라도 하면, 어머니는 늘 우유를 주셨는데, 신기하게도 우유는 나로하여금 병석에서 일어나게 만드는 만병통치약이 되기도 하였었다.
나의 기억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는 또 하나의 음식은, 열살 쯤 되었을 때에 먼 친척의 아주머니가 만들어주신 핫케익이었다. 아마도 핫케익의 재료는 근처의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왔을 것이다. 시럽도 없이 그냥 먹은 달콤하고도 부르러운 핫케익을 그 다음의 방문 때에는 먹을 수가 없었다. “문자가 왔는데 핫케익의 재료가 없어서 어쩌나” 아주머니는 다음에 오면 꼭 만들어 주시겠노라고 굳게 약속을 하시기도 하였다. 핫케익의 추억은 또한 먹지못하였던 그 날의 섭섭함과 실망과 함께 즐거운 나의 어린시절이기도 하였다.
그 맛을 잊지 못하여 그랬을 것이다. 내가 결혼을 한 후에는 아이들의 간식으로 핫케익을 자주 만들어주곤 하였다. 우리 아이의 친구들이 놀러오면, “오늘도 핫케익을 만들어 주실건가요?”라고 묻기도 하였는데, 내가 그랬던 것 처럼 그 아이들도 핫케익에 대한 즐거운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한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려서는 싫었던 음식이 어른이 된 다음에 먹어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아버지는 청국장을 좋아하셨으나 우리 형제들이 저마다 코를 쥐고 있어서 할 수 없이 상 밑에 내려놓고 혼자 잡수셔야만 했었던, 그 냄새나는 청국장이 미국에 살면서 어느날 느닷없이 먹고 싶어져서 혼자 웃었다. 또 하나의 싫었던 음식은 피난시절에 큰고모가 만드셨던 호박풀떼기라는 것이었다. 그 음식을 처음 보았을 때에는 한심하고 보잘것 없는 시골 음식이었다. 늙은 호박을 놋수저로 긁어서 가마솟에 담은 후, 콩종류와 온갖 잡곡에 찹쌀을 넣어서 죽처럼 만들었던 그 음식은 촌스러웠다. 지금은 틀림없이 웰빙음식에 속하는 호박풀떼기를 가끔 생각한다. 그러노라면, 그 구수한 냄새가 망향처럼 나의 가슴에 잔잔히 스며들면서 어린시절로 돌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음식이란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보게도 하고, 싫었던 음식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것은 아마도 먹거리는 입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머리로도 먹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누구에게나 어머니가 만드신 음식이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가장 훌륭한 음식이라고 믿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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