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찰스 다윈이 1859년에 발표한 ‘종의 기원’은 모든 근대과학의 새 장을 여는 획기적 계기였다. 모든 생명체가 자연의 선택에 의해 진화과정을 겪는다는 그의 주장은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했다는 종교적 가르침에 상반되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반대를 받고 있지만 이 이론은 생물학·고고학은 물론 현대의 DNA 연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학 분야 연구의 기반이 되었다.
그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은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이 골자이다. 자연조건에 맞지 않는 생물은 도태되고 이 조건에 맞는 적자만 생존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원리는 자연계의 생물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경제생활에서도 아주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의 경제 환경은 시대에 따라 기술의 발전, 인간의 욕구와 수요의 변화, 경제상태의 변화 등 다양한 현상으로 나타나는데 이런 환경에 잘 적응하는 산업이나 기업은 살아남고 또는 번영하지만 그렇지 못한 산업이나 기업은 도태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몇 년간 주식시세만 살펴보면 숫자적으로 확연히 알 수 있다. 기술의 발전과 수요의 변화를 잘 활용한 기업의 주가는 10센트에서 100달러까지 올라가기도 하지만 그와 반대로 변화에 역행한 기업의 주가는 수십 달러에서 10센트로 떨어지거나 아예 망해버려 없어지기도 한다.
요즘의 세계적인 경제 불황은 상당히 심각한 경제 환경의 변화이다. 대부분의 산업분야에서 수요가 격감하여 기업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분야의 하나가 자동차산업인데 미국의 상징 기업인 자동차 회사들이 파탄 직전에 놓여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무작정 구제금융을 줄 수만은 없으니 자구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GM에 대해서는 우량사업 분야를 떼 내어 독립법인으로 살리고 불량사업 부문은 파산처리하기를 원하고 있다. 크라이슬러는 자생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피아트와 합병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이번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구제금융’이라는 말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일상화되었다. 한국에서 ‘대마불사’라는 말처럼 미국의 대기업들이 경영난을 이유로 걸핏하면 구제금융을 요청했고 구제금융을 받은 기업들이 공적 자금을 고액 보너스 지급과 전용기 구입 등으로 펑펑 써버려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
대기업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지 않아서 기업이 도산할 경우 수많은 실업자가 발생하고 경제 시스템에 혼란을 야기하여 경제적·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자구책을 강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시루에 물을 붓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자구책 요구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미국이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 된 것은 자유경쟁 때문에 기술과 경영의 혁신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업에 공적 자금을 주는 것은 이 자유경쟁의 원리에 어긋난다.
물론 몸이 아픈 환자에게는 약물치료를 해야 하는 것처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전반적인 불황 상태에서는 어느 대기업에 돈을 주는 것보다는 수요를 촉진시켜 경제를 호전시키는 재정정책이 더 효과적이며 사회정의에도 부합할 것이다.
대기업에 돈을 쏟아 붓는 것은 오히려 기업의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저해하는 부작용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므로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에는 절대로 구제금융을 주지 말아야 하며 나아가서 원칙적으로 구제금융이 없어져야 한다. 그러면 자생력이 강한 기업은 살아남고 약한 기업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경제를 강하게 하는 길이므로 미국 경제는 다윈의 진화론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기영/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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