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금 책방에 있는데 풍선을 샀어 샀어” 느닷없이 친구가 전화를 걸어 와 한 소리다. 풍선을 샀다니, 내가 이 친구에게 풍선을 사다달라고 부탁이라도 했단 말인가? 뻥 해 있는데 친구가 다시 이야기한다. “조경란이 쓴 소설 있잖아. 풍선을 샀어. 자기 줄려고 지금 내가 샀다니까”그제야 풍선을 샀어, 가 책이름인 것을 알았다. 이즈음 젊은이들이 쓴 책들은 제목도 요상하다. 그렇다면 모자를 샀어. 연필을 샀어. 화장품을 샀어. 두부를 샀어. 이런 게 전부 소설의 제목이 될 수 있다는 말이겠지?
또 어떤 책의 제목은 ‘이태리 요리를 먹는 여자‘이다. 그 여자는 허구헌날 먹기만 하나? 그리고 이태리 요리만 먹을 게 아니라 일본 요리나 중국 요리를 먹는 여자에서 아예 짜장면을 먹는 여자, 순대를 먹는 여자, 사시미를 먹는 여자, 김치만두를 먹는 여자, 시루떡을 먹는 여자, 같은 건 어떨까 싶다.
우리 때는 책의 제목이라면 대체로 시어로 볼 수도 있을, 서정적이고 추상적 정서가 있는 글귀를 제목으로 썼다.?
에뜨랑제여 그대 고향은, 너를 부르는 소리되어, 저기 한 점 꽃잎은 지고, 압록강은 흐른다, 저 눈밭에 사슴이, 생의 한가운데, 그토록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내 삶의 저녁은 그대 햇살에, 밤으로의 긴 여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 내가 이제는 늙은이가 되어서 인지 이런 제목들은 우선 제목만 보았을 찰나에 이미 삶에의 깊고 예리한 성찰이 섬광처럼 다가들며 가슴 한 모서리가 뭉클해진다.
최근에 나온 노래 제목이‘총 맞은 것처럼’이다. 실연한 가슴의 아픈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아마 우리가 젊었을 때 그 제목을 들었다면 존웨인이 나온 서부활극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얼마 전에 책을 한권 샀는데 제목이 ‘독고다이‘이다. 무슨 사투리인가 혹은 슬랭인가 했더니 홀로 라는 뜻의 독에다 go die 란다. 혼자 목숨 걸고 다닌다는 뜻이었을까? 한번만 봐 주세요 를 see me once. 라고 엉터리로 지어낸 것처럼 이제는 영어든 한자든 그저 마구잡이로 갖다 부치고 뜻을 꾸며내는 것 같다. 프랑스 말같이 들리는 카페이름. 중국말처럼 들리도록 비틀어 논 중국집 상호. 한국어인지, 영어인지, 프랑스 말인지 도저히 가늠이 안 되는 상품들의 이름, 이름, 이름...
아이들의 이름마저도 유행이 있다. 유진은 이미 유행이 지난 이름이고 이즈음은 웬 소영이 소연이 가 그리 많은지, 또 현정이가 있는가 하면 , 정현이도 있고, 종민이, 민종이, 정민이, 민정이, 은지, 지은이, 미연이, 미영이, 영미, 아름이, 새롬이... 비슷비슷한 이름이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우리 땐 순자, 영자, 정자, 등 일본의 영향이 남아서 ‘자’로 끝나는 이름이 많았다. 그 때는 그런 이름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게다가 그전 세대엔 간난이, 애기, 입분이 가 적잖았는데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 어떤 이름이라도 불평할 일이 아닐 터이지만 이제 너무 비슷한 이름이 많다보니 예쁘게 느껴지던 음감도 더 이상 예쁘게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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