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읍 변두리 처가妻家
술 떨어진 밤 술 사러 간다
날벌레들 싸락눈처럼 몰려드는
가로등 밑 공중전화
똑, 똑
전화카드 돈 떨어지는 소리 들린다
똑, 똑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 아래
고향 집 대문 두드리는 소리 들린다
소를 닮은 그렁그렁한 눈망울에
축축한 달빛이 일렁인다
플라타너스 오그라든 나뭇잎
몰래 귀 기울이다 철커덕
수화기 놓는 소리에 깜짝 놀라
바닥으로 떨어진다
떨켜를 놓친 순간
나뭇잎도 지상地上의 불법체류자가 되나니,
불법체류자들
공중전화부스 안에서
밤늦도록 사각거린다
박후기(1968~) ‘불법체류자들’ 전문
늦은 밤, 술을 사러 가던 시인은 전화를 거는 외국인을 본다. 그렁그렁한 눈망울이 슬퍼 보이는, 국적을 제대로 알 수 없는 남자였겠지. 그가 전화를 끝내는 것과 동시에 플라타너스 이파리 하나 떨어졌겠지. 시인은 그 이파리를 불법체류자라고 느낀다. 바닥에 닿은 순간부터 외롭고, 쓸쓸하고, 정처 없어진 신세가 외국노동자의 처지와 흡사하다고. 공중전화부스 안에 모여서 사각대는, 마른 이파리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을 것은 당연하다.
한혜영 <시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